貧티지 마을 르포

▲ 달동네‧골목길 등이 인기를 끌면서 이런 곳을 찾는 관광객도 늘어나고 있다.[사진=강서구 기자]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중계동 ‘백사마을’, 인천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등은 옛 생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마을이다. 유명해지면서 마을을 찾는 외부인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빈티지여행’이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빈貧을 판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그곳을 다녀왔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이곳은 ‘개미마을’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벽화마을’ ‘사진 찍기 좋은 곳’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 등으로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개미마을은 한국전쟁 직후에 만들어졌다. 피난민이 하나둘씩 모여 천막을 치고 살아 ‘인디언 마을’로 불기도 했다. 개미마을 주민은 70대 이상의 노년층과 일용직 근무자가 주민의 주를 이루고 있다. 전날부터 내리던 비가 그친 7월 29일 홍제동 개미마을을 찾았다. 인왕산의 한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개미마을의 첫인상은 ‘시골 동네’였다. 어린 시절 볼 수 있었던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는 큰길을 사이에 두고 족히 50년은 돼 보이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개미마을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마을 벽에 그림이 그려진 이후다. ‘빛 그린 어울림 마을’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학생 128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환영, 가족, 자연 친화, 영화 같은 인생, 끝 그리고 시작 등 5개의 주제로 벽화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마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외부인이 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에는 ‘7번방의 기적’이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마을주민 김형주(가명ㆍ81)씨는 “벽화가 그려지고 영화에 등장하면서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며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주말이면 사진을 찍으러 오는 방문객이 더러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문객의 증가에도 마을의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물론 공중화장실ㆍ쉼터ㆍ놀이터 등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은 개선됐지만 유명세만큼 주민의 삶이 개선되진 않았다.

주민의 삶과는 다른 빈티지 여행

2006년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고 2009년 ‘개미마을 제1종 지구단위계획안’이 통과되면서 재개발 바람이 불었지만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이렇다 할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를 보여주는 것처럼 마을 곳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눈에 띄었다. 벽에 그려진 그림도 관리가 되지 않은 듯 지워지고 흐려져 있었다.

한 마을 주민은 “마을이 벽화 마을로 유명해지면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며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고 말했다. 백사마을은 홍제동 개미마을과 함께 서울의 3대 벽화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여서 백사마을로 불린다. 벽화로 유명한 백사마을이지만 개미마을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2011년 서울시가 추진한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이 주민의 반대에 막히면서 4년째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그사이 원주민의 상당수가 마을을 빠져나갔고 세입자만 남았다. 백사마을 곳곳에서 빈집이라는 푯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2011년 ‘백사 마을 희망그리기 프로젝트’로 그려졌던 벽화는 관리를 하지 않아 곳곳에 칠이 벗겨지고 낡은 채로 방치돼 있었다. 백사마을 주민은 “15년째 살고 있는데 요즘은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방치된 건물 곳곳이 깨져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곳이 한두곳이 아니다”고 말했다.

백사마을 역시 빈티지 여행지로 각광을 받았지만 주민의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한 주민은 “집주인들은 거의 집을 팔고 마을을 떠났다”며 “현재 남아있는 주민은 대부분 세입자”라고 말했다. 세입자에게 재개발 이슈는 마냥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재개발이 될 경우 세입자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백사마을에서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은 작가 이용봉씨는 “최근 백사마을의 슬럼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10~15년 사이 주민의 절반가량이 마을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이 슬럼화 되면서 외부인에게 적개심을 표출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사마을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겐 방문객도 재개발도 반갑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괭이부리마을 아이들」이란 소설로 잘 알려진 인천광역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괭이부리마을을 찾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인천까지 전철을 타고 이동한 뒤 버스로 갈아타고 만석부두 방향으로 8분 정도 더 가면 아파트와 공장지대에 둘러싸인 괭이부리마을이 나온다. 주위 풍경과는 이질적인 분위기의 괭이부리마을은 섬처럼 존재했다. 괭이부리마을 360여가구 가운데 230가구 300여명이 쪽방에서 살아가고 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낡은 건물이 마을 곳곳에 있었다.
▲ 빈티지여행이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사진=강서구 기자]

마침 괭이부리마을을 찾은 날은 비가 와서 그런지 낡은 집들은 더 낡아 보였다. 괭이부리마을이 다시 이슈가 된 것은 최근이다. 인천시 동구청이 쪽방촌에 ‘옛 생활 체험관’을 만들기로 하면서부터다. 주민의 모임장소로 쓰고 있는 2층짜리 주택의 일부를 고쳐 체험관으로 활용한다는 게 구청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가난을 상품화’ 한다는 여론의 비판이 일었고 주민 160여명은 7월 8일 체험관 반대 성명서를 제출하기까지 했다. 결국, 인천구 동구의회는 ‘옛 생활체험관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을 상임위원회심사에서 부결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주민이 받은 상처는 여전했다. 특히 외부인을 향한 적개심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왜 사진을 찍나”며 불쾌감을 표출한 주민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외부인을 피하느라 바빴다. 집을 나서던 한 주민은 사진을 찍는 기자를 보고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일도 있었다.

‘가난 상품화’ 논란이 남긴 과제

한 주민은 “사건 이후 외부인을 꺼리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며 “외부인이 들어와 신기한 듯 동네를 살피고 다니면 주민은 죄인이 된 것처럼 자리를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괭이부리마을의 논란은 주민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은 동구청의 관치행정에 있다는 비판이다.

이 마을에 사는 임종연(괭이마을 소재 기차길옆 작은학교 상근교사)씨는 “주거정비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민이 원하지 않는 사업은 하지 않겠다던 구청의 약속을 스스로 어겼다”며 하지만 주민의 의견반영은커녕 조례안 상정을 공지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옛 생활 체험관의 경우 하루 숙박료가 1만원이다”며 “한달에 30만원을 벌기 위해 주민의 삶과 마을을 구경거리로 만들려 했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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