貧티지 이코노미

소위 ‘달동네’는 그냥 생겨난 게 아니다. 전쟁과 경제개발이라는 과정 속에서 국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밀려난 사회 약자들이 그래도 살아보겠다며 잡은 터가 바로 달동네다. 그런 달동네가 요즘 ‘포토존’이 됐다. 이곳의 참된 가치를 살리자며 ‘도시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달동네에 사는 ‘빈자貧者’는 말이 없다.

▲ 정부와 지자체는 달동네 주민들을 그 지역의 주인으로 인정해준 적이 없다. 사진은 올해 2월 구룡마을 주민들의 반대에도 강남구청이 주민회관 건물을 강제 철거하는 모습.[사진=뉴시스]
# 달동네를 찾은 A씨의 눈에 비친 풍경 =하늘로 이어진 언덕배기 골목길. 그 골목길 옆으로 집들이 줄지어 있다. 지금은 서울에서 보기 힘든 단층형 블록집. 곳곳에는 학생들이 그린 듯한 벽화가 줄지어 있다. 한 청년이 작은 손수레 하나를 끌며 앞장서고, 그의 어머니인 듯한 노인이 뒤따르며 골목길을 오른다. 그들은 골목에서 마주친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며 대화도 몇마디 주고받는다. 옆집에 살아도 인사 한번 하지 않는 아파트 풍경과 대비된다. 가난해도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추억의 그 동네가 생각난다.

# 달동네에 사는 B씨의 눈에 비친 풍경 = 일용직건설 노동자인 B씨. 오늘도 비가 와서 일을 쉬었다. 벌써 이틀째다. 올여름에도 선풍기 한대 없이 지내야 할지 걱정이다. 어머니가 밤새 식당일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이다. 오늘도 식당에서 이런저런 찬거리를 받아오셨을 게다. 죄송한 마음에 마을 신작로까지 나가 어머니의 짐을 대신 끌고 왔다. 외지 사람이 우리를 멀뚱멀뚱 본다. 마을이 신기한 모양이다. 골목에서 어르신 두분이 앉아 이런 얘기를 나눈다. “오늘도 한집 나갔대.” “뭐든 간에 무작정 쫓아내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어머니가 “벌써 얘기 나온 지가 몇 년인데, 지금까지 말 없으면 괜찮겠죠”라며 안심시킨다. 어르신들에게 찬거리 일부를 나눠 주신다. 동네에 재개발 얘기가 나온 지 벌써 4년째. 세입자인 우리로선 득볼 일이 별로 없다. 여차하면 떠나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게 걱정일 뿐이다. 

이 이야기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104번지 마을)에서 실제로 만난 모자母子의 모습을 현지인과 외부인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달동네를 살아가는 이들, 그리고 이곳을 잠깐 들러 풍경만 눈과 카메라에 담아가는 이들의 시각 차이는 이처럼 크다. 누군가에게 ‘추억과 향수’를 제공하는 장소가 주민들에겐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난의 치부’인 동시에 ‘목숨보다 소중한 삶의 공간’이다. 최근 달동네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재개발이 ‘외부인의 눈으로 본 시각’이나 ‘자본논리’에 따라 이뤄져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동네에 외부인들이 하나둘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건 대략 2000년대부터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와 빌딩 중심의 도시개발로 인해 달동네가 희소성을 가지게 되면서다. 최막중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예전에 수많은 달동네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신작로와 아파트는 매우 신기하고 희소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달동네가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 숲으로 변모하면서 이제는 달동네와 골목길이 신기하고 희소한 공간이 됐다. 남은 철로, 공장, 창고, 점포, 한옥, 골목길, 계단길 등이 귀중한 자산으로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 많은 이들이 겨울만 되면 달동네로 몰려와 봉사활동을 하지만, 정작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인 이들은 없었다.[사진=뉴시스]
여기에 과거를 되씹는 복고나 빈티지 열풍도 한몫했다. 달동네는 사진 찍기 좋아하는 이들의 명소가 됐고, 과거를 시점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으로 거듭났다. 그 원조격인 마을이 바로 경남 통영의 동피랑마을이다. 80여가구(현재 50여가구 거주)가 모여 살던 이 마을은 2007년 재개발 계획으로 철거될 뻔했지만 벽화마을로 재탄생했다. 매년 ‘동피랑담벼락그림공모전’을 열어 예술가의 작품을 재능기부 받고, 담벼락 그림들을 2년마다 새단장했다.

달동네 희소성, 자본을 불렀다

자연스레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주민들은 동피랑생활협동조합을 만들고 가게를 운영했다. 이렇게 생긴 수익은 주민들의 생활 지원에 쓰였다. 달동네의 희소성을 이용해 동네를 잘만 꾸미면 주민들의 삶도 나아지더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러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일부 지자체가 달동네를 상품화하겠다고 나선 거다. 인천 동구청이 대표적이다. 동구청은 6월 중순 ‘인천시 동구 옛 생활 체험관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만석동 쪽방촌인 괭이부리마을 체험관을 만들어 상품화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주민들은 ‘가난의 상품화’라며 동구청을 비난했다. 결국 이 조례안은 만장일치 반대로 부결됐다. 마을 주민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둥구청에서는 해당 사업에 대해 괭이부리마을 주민 그 누구와도 논의한 바 없다.”

그럼에도 동구청은 이후 마을 주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가난을 파는 ‘못된 비즈니스’를 펼쳤음에도 별다른 죄罪의식을 못 느낀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곳 주민들이 그런 처우를 받을 대상도 아니다. 누구도 스스로 선택해서 ‘달동네 생활’을 시작한 게 아니라서다. 특히 인천의 괭이부리마을은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던 판자촌이었다. 그리고 이곳 주민들은 모두 맨손으로 마을을 일궜다. 정부와 지자체가 마을주민들의 동의나  그들을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도 없이 마을을 아파트촌으로 짓겠다느니, 마을을 살려 상품화하겠다느니 말할 자격이 없는 이유다.

문제는 달동네에 ‘못된 비즈니스’를 적용하는 행태가 현지인의 삶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단적인 예다. 무조건 허물고 새로 짓는 재개발이 아닌 달동네, 골목길 등을 십분 살리는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곳 주민들은 작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들의 터전이 재생된다는데, 정작 현지인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 백사마을은 한때 사진작가들의 명소였지만, 벽화는 방치되고 빈집도 많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다.[사진=김정덕 기자]
도지재생 프로젝트 과정에서 삐걱대고 있는 서울 백사마을의 예를 살펴보자. 2011년 서울시는 백사마을에 ‘주거지 보전 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옛 모습을 간직한 저층집과 고층아파트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재개발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수익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년째 재개발이 중단돼 있다. LH공사조차 이 지역에 아파트를 지을 경우 수익이 남지 않는다는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했다. 서울시는 이 마을에 영화촬영지, 연극공연장, 창작마을 등을 지어 분양아파트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계획이지만 여의치 않다. 방식은 다르지만 백사마을의 원형을 살려 상품화하겠다는 건 인천 동구청과 다를 바 없다. 주민들의 삶을 보전해줄 수 있는 보완책도 나온 적 없다.

그러는 동안 백사마을 주민들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험한 집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원주민은 상당수가 떠났고, 대부분 세입자만 남았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이곳의 세입자들은 개발방식에 관한 어떤 입장이나 주장을 확실하게 내놓지 않는다. “집 없이 쫓겨나지 않고 지금보다 깨끗한 곳에서 사는 게 바람”이라는 말을 조용히 입에 담을 뿐이다. ‘주거지 보전 사업’을 추구하는 서울시의 욕구가 좀 더 나은 생활환경에서 온전하게 살길 바라는 주민들의 욕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민들의 욕구와 지자체의 욕구가 일치하지 않는 달동네는 여기뿐만이 아니다. 개포동 구룡마을 역시 재개발을 앞두고 마을 주민들은 배제된 채 서울시와 강남구가 공영개발이냐 환지방식이냐를 놓고 다투기 바빴다. 최근 강남구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구룡마을은 공영개발로 추진 중이다. 하지만 마을주민들 사이에선 지난해 겨울에 일어난 화재를 두고 “누군가 마을주민들의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저지른 방화”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개발은 추진 중이지만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탓에 여전히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 재개발 논할 자격 있나

과거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재개발이 이뤄질 때 정부는 이렇게 말했다. “헌집을 부수고 새집을 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최소 수십배나 비싼 새집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최근 지자체들은 이렇게 말한다. “달동네를 살리고 잘 가꿔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면 마을이 더 살기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모이고 지역경제가 살아난들 막상 달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이 윤택해질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자본논리를 앞세운 이들의 개발논리 속에서 주민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거다.

이른바 달동네. 우리는 그곳을 얼마나 알고 있나. ‘가난은 소박하고 아름답다’며 그곳에서 셔터를 누르진 않았나. 그곳의 참된 가치를 살려야 한다며 그들에게 ‘재생’을 강요하진 않았나. “우리가 해줄 테니 가난한 당신들은 가만히 있으라”면서 말이다. ‘빈貧티지 이코노미’가 남긴 추악한 결과물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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