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사면의 이상한 경제학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사면 됐다. [사진=뉴시스]
최태원 SK 회장 등 경제인 14명을 포함한 총 6527명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최 회장의 특별사면 소식에 SK그룹 안팎에선 기대감이 감돌고 있다. 반면 사면을 받지 못한 한화(김승연 회장), LIG(구자원 3부자)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광복절 특사에 웃고 우는 재계의 표정을 살펴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사면됐다. 이번 사면은 법무부가 지난 13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경제인 14명을 포함한 형사범과 불우 수형자 등 6572명에 대한 특별사면·감형·복권을 14일자로 시행키로 하면서 성사됐다.  당초 최 회장은 ‘복권 없는 사면’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사면과 복권이 함께 이뤄지면서 경영 복귀도 가능해졌다. 만약 복권되지 않았다면 남은 형기는 면제되지만 회사의 등기이사직은 맡을 수 없었다.

SK는 내부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다만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의 사면이 좌절되면서 이를 겉으로 표시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최 회장은 2013년 1월 31일 회사돈 465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이후 2년7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재벌 총수로선 역대 최장기간 복역이다. 최 회장은 사면 이후 자숙의 의미에서 당장은 주요 계열사 등기 임원 등을 맡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반적인 경영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투자와 해외 업무 등 대주주의 힘이 필요한 부분에만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투자계획을 포함한 경영계획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특히 자신의 부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 경영 정상화를 위해 직접 해외를 다니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지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SK그룹은 최 회장 부재로 에너지·화학, 반도체, 자원개발 등 기존 사업 외 신규사업 진출을 결정하지 못했다. 해외 유수 기업과 해외 정부를 상대로 한 사업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복귀에 힘입어 대규모 투자와 협력사업이 전개되면서 흐트러졌던 그룹의 역량이 다시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2003년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됐다가 그해 9월 7개월 만에 복귀했다. 그는 당시 소버린 사태로 회사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이었지만 지배구조와 사업구조 개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SK그룹 임직원들은 3년 가까이 비워뒀던 최 회장 집무실을 정리하고 보고 사안들을 챙기며 최 회장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기업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사회와 국민이 기회를 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기업 활동을 통해 국가 경쟁력 향상과 경제 살리기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최 회장 경영복귀에 대한 기대감은 사내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에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특별사면 확정 소식이 전해지자 SK그룹주의 주가가 일제히 올랐기 때문이다. 소식이 나온 직후인 지난 13일 오후 SK이노베이션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전 거래일 대비 6.57%(6100원) 오른 9만8900원에 거래됐다. SK컴즈(1.18%), SK네트웍스(1.41%%), SK C&C(2.14%), SK케미칼(2.93%), SK증권(1.96%) 등의 주가도 일제히 올랐다.

하지만 이번 사면을 통해 오너의 사면을 기다린 기업들이 모두 SK그룹처럼 웃는 것만은 아니다. 사면 결과 때문에 울상을 짓는 기업들이 있다. 한화와 LIG가 대표적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LIG회장 삼부자,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등은 법무부 초안에서부터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승연 회장의 사면을 기대하던 한화그룹은 말을 잃은 분위기다. 한화그룹은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정부 시책에 대기업 중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사면을 노려왔다.

 
삼성 빅딜, 시내 면세점 사업권 획득 등에서 김승연 회장의 역할을 부각, 우호적인 여론 조성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면접이 성사되는 등 복귀에 청신호도 많았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김승연 회장이 사면돼 ㈜한화 등 각 계열사 대표이사직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김승연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경영에 사실상 복귀했지만, 현행법상 2021년까지 계열사 등기 임원을 맡을 기회가 차단되는 등 완전한 경영복귀는 하지 못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2011년 부실계열사를 부당 지원하고 특정 계열사 주식을 가족에게 헐값에 넘겨 회사에 수천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된 상태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지만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점과 배임액 상당 부분을 변제한 점 등이 인정돼 풀려났다.

하지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으면 징역형의 집행이 끝난 후 5년간(집행유예는 2년간) 범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 등에 취업할 수 없어 2021년까지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을 맡을 수 없다. 한화그룹은 말을 아끼고 있다. 정부와 날을 세우는 모습이 연출될 것을 우려하는 모양새지만 침울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LIG그룹도 침울한 분위기다. 구자원 전 LIG그룹 회장 3부자는 2200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를 발행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로 유죄가 확정됐다. 이후 LIG손해보험 등 자산을 매각해 피해 회복에 나섰지만 사면이 불발됐다. LIG그룹은 “LIG건설 기업어음(CP) 투자 피해자 전원에 대한 피해보상을 위해 핵심 계열사였던 LIG손해보험을 매각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총수 일가가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못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번 사면이 얼마나 정당하냐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면의 의미를 이렇게 자평했다. “생계형 사면을 위주로 다수 서민과 영세업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했고, 당면한 과제인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일부 기업인도 사면의 대상에 포함했다.” 하지만 기업인 사면이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검증된 적은 없다. 사면 이후 뼈를 깎는 반성을 통해 한국경제를 위해 매진한 재벌 총수도 드물다. 이번 사면의 효과를 제대로 검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은경 더스쿠프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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