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행의 재밌는 法테크

▲ 일정한 재산을 제3자에게 명의신탁한 경우 현행법은 이를 증여로 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실질과세원칙에 따르면 단순 명의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면 안 된다. 하지만 명의신탁재산의 경우에는 명의자에게 증여세가 부과된다. 다만 조세 회피의 목적이 없었다면 증여세는 부과되지 않는다. 이를 증명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나라 살림을 꾸려가려면 세금이 필요하고,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내는 상황이 발생하면 안 된다. 이런 조세형평의 실현을 위해 ‘실질과세원칙’이 확립돼 있다. 그에 따라 과세 대상을 누구로 하느냐와 관련 명의자 외 사실상 귀속자가 있을 땐 그 귀속자에게 조세를 부과한다. 사업자등록증상의 명의자와 사실상의 사업자가 다른 경우 사실상의 사업자에게 조세를 부과하는 식이다.

주식회사의 주주가 자신의 주식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 주식에 대한 명의신탁인 셈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조세회피도 그중 하나다. 이를 방관하면 이 또한 형평에 반한다. 그래서 명의신탁재산의 경우, 실질과세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2 제1항이 그것이다. “권리의 이전이나 행사에 등기가 필요한 재산(토지와 건물은 제외)의 실제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 그 명의자로 등기 등을 한 날에 그 재산의 가액을 명의자가 실제소유자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본다.”

일정한 재산을 제3자에게 명의신탁한 경우엔 증여로 보고, 명의자에게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다만 명의신탁에 ‘조세회피의 목적’이 없었다면 증여세를 부과하지는 않는다. 대법원의 판례를 보자. “조세회피 목적이 없었다는 점에 관한 증명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명의자에게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A씨는 주식회사의 대주주이며 대표이사다. 그는 사업상 필요에 의해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1인당 주식담보 대출한도가 있어 원하는 만큼의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추가 대출을 받기 위해 지인 15명에게 부탁해 자신의 주식을 지인들 명의로 신탁하고, 지인들에게 이전한 각 주식을 담보로 원하는 만큼의 대출을 받으려 했다. 그 결과, 주식을 지인들에게 분산해 명의신탁한 A씨는 1억원가량의 종합소득세를 덜 내게 됐다. 조세당국은 A씨에게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에게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2 제1항을 근거로 증여세를 부과했다. 단순히 이름을 빌려주었을 뿐인 이들은 조세회피의 목적이 없었다고 맞섰다. 분쟁은 대법원까지 가서 최종적인 판단을 받게 됐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봤다. “명의신탁이 조세회피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 이뤄졌음이 인정되고 그 명의신탁에 부수해 사소한 조세경감이 생기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와 같은 명의신탁에는 조세회피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단서 조항을 덧붙였다. “다만, 다른 주된 목적과 아울러 조세회피의 의도도 있었다고 인정되면 조세회피목적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이렇다. “A씨가 지인들에게 주식을 명의신탁함에 있어 ‘1인당 대출한도를 피해 추가로 대출을 받기 위한 주된 목적’ 이외에도 ‘주식의 배당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의 부담을 경감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이유로 대법원은 조세회피의 목적이 없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세당국의 증여세 부과는 적법했던 것이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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