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제체력부터 살리자”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폈지만 성장이 부진하고, 세법개정안은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사진=뉴시스]
달콤하지만 위험한 게 마이너스 대출이다. 급할 때 통장에서 뽑아 쓸 수 있다고 마구 손댔다가는 빚이 쌓이고,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파산하고 만다. 어디 씀씀이가 헤픈 가계만의 일인가. 대한민국 정부도 지금 그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두번째 경제사령탑을 맡은 최경환 부총리는 경제체력부터 살리자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폈다. 그래도 성장이 지지부진하자 두차례 추경예산을 짰다. 그때마다 부족한 세수稅收를 메우려고 ‘마이너스 국가대출’ 국채를 발행했다. 

빚을 지지 않으려면 지출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리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봉급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는 가계야 씀씀이부터 단속하지만, 나라살림은 지출을 줄이기 어려운데다 재정여건도 악화되는 구조다. 저출산ㆍ고령화 여파로 노인복지 등 재정으로 해결해야 할 일은 늘어나는 반면 세금을 내는 청ㆍ장년 인구는 줄어든다. 성장동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장차 한반도 통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정부 씀씀이를 줄이기 힘든 현실에선 적절한 수입원을 찾아내야 한다.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수입 범위 내에서 지출함으로써 재정 건전성을 지키고 미래세대에 채무 부담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 해마다 이맘때 기획재정부가 더위에 땀 흘리며 마련해 9월 정기국회에 올리는 세법개정안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집권 3년차에 내놓은 2015년 세법개정안은 이런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야당에서 제기한 법인세 인상은커녕 비과세와 감면을 줄여 대기업들이 세금을 더 내도록 하겠다는 경제부총리의 발언도 지켜지지 않았다. 절반에 육박하는 근로소득세 면제자 축소나 대선 때부터 강조해온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 상식에 어긋나고 효과가 의문시되는 방안도 있다. ‘사치세’로 불려온 개별소비세 부과기준을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올리는 것은 무차별적으로 단행한 담뱃세 인상과 상치된다. 소비 진작용이라지만 개별소비세가 사라지는 200만원 초과~500만원 이하 가방ㆍ시계 등 상당수 명품은 외제로 부유층이나 살 수 있어 내수 활성화와는 거리가 있다.

 
2016~2020년 사이 세수가 1조원 남짓 늘어나도록 궁리했다는데, 해마다 발생하는 세수결손에도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 10조9000억원, 올해 3조원으로 예상되는 세수결손은 재정수지 적자(지난해 25조원, 올해 46조원)를 키우고 국가채무(지난해 530조원, 올해 580조원) 증가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조세정책과 예산편성권을 한 손에 쥔 기획재정부의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 재작년 이맘때 2013년 세법개정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 일주일도 안 돼 급수정됐다. 근로소득세 공제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는데 반대 여론이 일자 연간소득 5500만원 이하는 세 부담이 늘지 않게 바꿨다. 그럼에도 올 2월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토해내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들끓자 매달 봉급날 세금을 원천징수하는 기준인 간이세액표 그대로 뗄지, 80% 또는 120%를 뗄지를 봉급생활자더러 정하라는 꼼수를 썼다.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하니 그 틀 안에서 세입을 짜야 하는 고충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세수확충 노력 없이 국채발행 유혹에 빠져들다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을 것이다. 친박계 실세 정치인 출신인 최경환 부총리가 나서 대통령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고르게 세금을 더 거둬 긴요한 데 제대로 쓰자고. 필요하면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자. 광복 70년의 해, 대한민국 재정사를 오염시키는 ‘마이너스 국가대출 폭탄 돌리기’는 중단해야 마땅하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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