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 메르스 걸린 한국경제의 대안

▲ 정부가 메르스 발병 초기에 관련 정보를 통제하자 '메르스 공포'가 더 확산됐다.[사진=뉴시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급속도로 확산하던 지난 6월 초. 정부가 환자 발생 병원에 대한 비공개 입장을 고수하자 환자들이 거쳐 간 병원 이름과 주소를 공유하는 인터넷 웹사이트가 등장했다. 이름하여 ‘메르스 확산 지도’. 언론에 보도된 확진환자 사망 병원과 시민들이 제보한 감염환자가 다녀간 병원을 지도 위에 표시했다. 정부의 ‘메르스 비밀주의’에 불안감과 답답함을 느낀 시민들이 집단 지성을 발휘한 것이다. 사이트 접속자가 폭주했고, 미디어들이 뒤따르자 결국 정부도 발생 지역과 병원 이름을 공개했고 메르스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경제는 상당 부분 심리에 좌우된다.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불안은 경제를 잠식하게 마련이다. 메르스 발생 초기 정부가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쉬쉬하자 불안감이 증폭됐다. 불안은 공포와 괴담을 낳았고, 각종 행사와 모임이 취소됐다. 기진맥진하던 내수가 더욱 위축됐다. 외국인 관광객도 급감했다. ‘메르스 불안’은 ‘성장률 잠식’으로 나타났다. 2ㆍ4분기 성장률이 0.3%(전분기 대비)로 재정위기를 겪은 그리스나 포르투갈보다 낮았다.

메르스 공포는 국내 소비심리를 냉각시키는데 그치지 않았다. 한류에 힘입어 상승했던 국가 이미지를 추락시키면서 한국 제품의 수출과 판매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현대ㆍ기아차의 판매 위축이다. 메르스 발생 이전인 올 3월 16만대를 넘어섰던 중국 내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 7월 8만여대로 반토막났다. 한국은행은 메르스 사태가 연간 성장률을 0.2%포인트 정도 갉아먹을 것으로 예상한다. 블룸버그 집계를 보면 올 1월만 해도 3.5%였던 국내외 금융회사 37곳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은 지난 7월 2.9%로 내려갔다가 8월 들어 2.7%로 더 떨어졌다.

한국이 발원국도 아니면서 두달도 넘게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고 경제에까지 주름살을 지운 것은 누구 책임인가. 초기부터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민관이 함께 기민하게 대응했더라면 추가 감염을 막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정부와 공공기관의 비밀주의와 정보 및 데이터 독점은 서둘러 청산해야 할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틀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하는 현대 정보사회는 정보 및 데이터의 개방과 공유, 협력을 요구한다.

국가나 공공기관, 특정 대기업이 독점해온 정보를 개방해 공유하면 관련 민간 전문가와 중소ㆍ벤처기업과의 협업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다. 미국에선 ‘감기’ ‘독감’ 같은 단어의 검색빈도가 높은 지역을 지도에 표시해 신종플루 발생 가능 지역을 예고하는 구글의 ‘플루 트렌드(Flu Trends)’ 서비스가 질병통제센터보다 먼저 가동된다.

우리나라도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공공 데이터를 적극 공표하고, 이를 분석해 국민이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 수준으로 가공해 활용하는 ‘데이터 민주화’를 이뤄야 사회 갈등을 풀고 신산업도 창출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정부 3.0’도 정부가 보유한 공공 데이터를 과감히 공개함으로써 국민 개개인이 요구하는 행정수요를 찾아 서비스하자는 것 아닌가. 노동ㆍ공공ㆍ교육ㆍ금융 등 4대 개혁도 관련 정보와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선 나아가기 어렵다.

세계는 지난 20년간 지속돼온 IT(정보기술) 시대에 이어 ‘DT(데이터 기술) 시대’에 주목하고 있다. DT란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가치를 창출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을 일컫는 것으로 대기업보다는 중소ㆍ벤처기업, 기성세대보다는 청년세대가 주도할 것이다. 메르스에 지친 한국경제, 데이터 민주화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 길이 바로 ‘창조경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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