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금융위기 우려

▲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달러 대비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국제금융시장의 ‘신흥국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달러 대비 신흥국 통화가치의 하락세가 워낙 가팔라서다. 문제는 통화가치의 하락을 막으려는 신흥국 중앙은행의 전략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흥국 통화가치의 하락 속도가 심상치 않다. 브라질 헤알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2014년말 대비 31%(8월 11일 기준)나 급락했다. 관리변동 환율제도를 채택해 상대적으로 통화 가치 변동성이 낮은 아시아 통화도 예외 없이 큰폭으로 절하됐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와 말레이시아 링깃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브라질ㆍ멕시코ㆍ칠레ㆍ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의 통화가치도 큰 폭으로 절하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란드화)ㆍ러시아(루블화)ㆍ터키(리라화) 등 일부 국가의 통화가치는 역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기준금리 인상 우려에다. 중국 경기둔화의 영향으로 대對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원자재 수출비중이 높은 브라질 등 남미 국가, 인도네시아, 남아공, 러시아 등이 타격을 입은 것도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특히 신흥국의 통화가치 하락세에 기름을 부은 건 8월 11~13일 이뤄진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다. 이는 투자자의 투매심리를 자극했고, 아시아 신흥국 통화를 중심으로 한 통화 가치의 동반 절하로 이어졌다.

사실 2013년 미국의 테이퍼 텐트럼(긴축발작) 이후 ‘통화 취약 5개국(인도네시아ㆍ브라질ㆍ인도ㆍ터키ㆍ남아공)’은 물론 다수의 신흥국 통화가치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각국의 외환당국은 지금까지 이를 용인해 왔다. 완만한 통화가치 하락이 수출 증가로 이어지면 경제성장과 경상수지 개선으로 이어질 공산이 켜서다.
 
그러나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통화가치 하락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대수익률이 낮아져 외국 투자자가 투매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수입물가의 급등으로 가파른 인플레이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신흥국들은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테이퍼 텐트럼 당시와 비슷한 외환시장 직접 개입, 기준금리 인상 등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7월 말 일 달러 매각 규모를 5200만 달러(617억5000만원)에서 4배가량 증가한 2억 달러(2375억원)로 확대했다. 또한 미국의 금리인상에 맞춰 3~4분기 중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7월 7일부터 27일까지 달러 매도 개입을 통해 달러ㆍ링깃 환율을 달러당 3.8링깃에 묶어뒀다. 브라질은 기준금리를 지난해 10월 이후 0.05%씩 7차례에 걸쳐 인상했다. 현재 브라질의 기준금리는 14.25%로 9년래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신흥국의 환율방어 노력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 링깃화는 당국의 개입이 중단된 이후 다시 하락했다. 게다가 통화가치 방어 실패로 외환보유고를 소진하는 우를 범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정책 불신을 키운 것도 패착이다. 브라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헤알화는 올해 가장 큰폭으로 절하됐다. 하지만 무리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기는 더욱 나빠졌고, 금리인상으로 해결하려던 물가상승 압력은 여전하다. 신흥국 통화 불안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얘기다.
이지형 HMC투자증권 연구원 jihyung.lee@hmc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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