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받은 건설사 자성할까

▲ 건설사 대표들이 '공정경쟁과 자정실천 결의대회'에서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8ㆍ15 특별사면을 통해 건설사 2008곳이 면죄부를 받았다. 이 건설사 CEO들은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면서 ‘청렴경영’을 선포했다. 비장한 선포식이었지만 신뢰하긴 어렵다. 사면을 받고 자성을 결의했던 건설사가 ‘담합’으로 처벌을 받은 건 한두번이 아니라서다. ‘양치기 건설사’의 청렴경영 선언. 이번에도 늑대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거기에 건설사가 왜 들어가 있습니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사면을 두번 받아서 안 된다면서….”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의 한탄이다. 8ㆍ15 특별사면을 통해 건설사 2008곳이 면죄부를 받았기 때문이다.

건설사로선 쾌재를 부를 만한 일. 이유는 간단하다. 건설사가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에서 담합 등 불공정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정부는 해당 업체에 공공기관 입찰제한 처분을 내린다.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어, 과징금보다 확실한 처벌 수단으로 꼽힌다. 이런 ‘입찰제한’이 풀렸으니, 건설사가 함박웃음을 짓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건설사가 ‘면죄부’를 받았다는 점이다. 지난 8월 13일 이전 공정위로부터 행정제재를 받은 업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특별사면됐다. 최근 고속철 사업 등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공사 담합으로 적발된 업체도 모조리 면죄부를 받았다. 정부는 “건설업체의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위해 사면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은혜를 입은 건설사는 ‘청렴경영’ 약속으로 화답했다. 8월 19일 국내 72개 건설사 사장단이 한자리에 모여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다. 담합이 재발되면 CEO가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강도 높은 발언도 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공수표에 그칠 공산이 크다. ‘담합 등 불공정행위→처벌→사면→청렴경영약속→담합 등 불공정행위’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담합 등 죄를 저지른 건설사가 사면을 받은 건 2000년 이후 올해가 네번째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밀레니엄’을 맞아 담합 건설사를 사면조치했다. 총 4412개의 건설 관련업체가 면죄부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는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사업 공사에서 입찰담합으로 적발된 GS건설, SK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림산업 등 6개 대형 건설사를 사면했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 1월 특별사면을 통해 부정당업자 처분을 받아 공공입찰이 제한된 68개 건설사의 제재를 풀어줬다. 건설사들은 사면을 받을 때마다 ‘담합을 하지 않겠다’는 자정결의를 했다.

그러다 지난해 사건이 터졌다. 공공부문 입찰 담합 18건이 적발돼 42개사가 처벌을 받은 것이다. 과징금 규모만 8496억원에 달했다. 시공능력 30위 이내 건설사 중 26개사가 제재대상이었다. 문제는 이 담합이 2008~2009년 시행된 사업장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건설업계 담합사건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받은 호남고속철도 사업, 4대강 살리기 1ㆍ2차 턴키 사업도 이 시기에 진행됐다. 건설사들이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에 받은 사면을 까맣게 잊었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받은 대규모 사면도 잊었다. 2011~2012년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천연가스 주배관 및 관리소 건설공사’ 입찰 과정에서 현대건설 등 22개사는 담합을 통해 낙찰자를 결정하다 덜미가 잡혔다. 특별사면을 받은 건설사들의 ‘청렴경영 선언’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치기 소년’ 건설사는 ‘오지도 않는’ 늑대를 벌써 수차례 불렀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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