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 ➐ 김덕상 OCR Inc. 대표 편

김덕상 OCR Inc. 대표는 “부모가 자식을 만들지만 자식도 부모를 만든다”고 말한다. 파산의 충격으로 극단적인 선택 직전까지 간 그를 돌려세운 것은 “아빠도 힘을 내라”는 중학생 딸의 편지였다. 그는 가족 관계가 힘든 건 가족이라 서로 좋아하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김덕상 OCR Inc. 대표는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가족관계에서도 황금률”이라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Q 멘티가 멘토에게

20대 딸은 왜 아빠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할까요? 아빠와 단 둘이 있으면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대화가 시작됐다가도 곧 끊깁니다. 모녀처럼 끈끈한 부녀 관계란 기대하기 어려운 걸까요? 그러고 보면 남보다 가족과의 관계가 더 어려운 거 같습니다.

A 멘토가 멘티에게

부녀 관계는 사실 특이한 경우 아니면 나쁠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서먹서먹할 뿐이죠. 어색한 침묵을 깨려면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합니다. 아빠의 관심사를 화제로 삼는 게 효과적입니다. 아빠가 클래식을 좋아한다면 “이러이러한 클래식 연주회를 한다는데 같이 구경 안 갈래요” 해 본다든지 당구를 좋아한다면 당구를 가르쳐 달라고 할 수도 있겠죠. 아빠가 관심이 있는 분야를 화제로 삼는다면 대화를 이어가기가 훨씬 수월할 거예요. 대한민국의 50대 남자는 대체로 대화의 기술이 부족합니다.

아빠가 직장생활을 힘들어 하면 “아빠 참 힘들겠다” 하고 위로를 할 수도 있겠죠. 아빠를 향한 고마운 마음을 평소 제대로 표현 못했다면 “아빠가 있어서 든든해” 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마 집안 분위기도 좋게 바뀔 거예요. 부모 자식 간 상처도 누군가 먼저 말을 걸면 아물 수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 대화의 단절은 물꼬가 트이면 얼마든지 해소됩니다. 부부 간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부모가 단절의 원인을 제공한 경우도 있겠죠. 이런 말 하면 꼰대 소리 듣겠지만, 그랬더라도 부모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낳아준 부모 아닙니까? 부모가 있었기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겁니다. 설사 부모가 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먼저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과거 저의 멘티 중에 고등학교 50년 후배가 있었습니다. 당시 고3이었죠. 하루는 저를 찾아와 아버지와 3년째 대화를 하지 않는데 그래서 자기도 괴롭다고 하더군요. 고교 3년 내내 대화를 하지 않았고 집에서 마주치면 아버지를 피해 방으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아빠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빠도 자기한테 실망한 거 같다고 하는 거예요. 사실 나는 그 학생의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 아빠가 퇴근해 돌아오시면 현관으로 달려가 아빠를 한번 안아드려 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할 수 있겠니?” 부자 간 대화의 단절이 이 한번의 허깅으로 해결됐습니다.

 
가족과의 관계가 힘든 건 가족이라 서로 좋아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돈 받고 일하는 관계가 가장 쉽습니다. 봉급을 받으려면 일을 해야 하니까요. 상처도 본래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에게서 잘 받습니다. 한편 노력한 만큼 좋아지는 게 가족 관계입니다. 조직 내 인간관계 문제는 경영 기법으로 풀 수 있지만 가족 관계의 매듭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노력 없이는 풀기 힘듭니다.

나는 우리 회사 직원은 물론 지금은 30대인 두 아이에게도 미안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예를 갖춰 사과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같이하기로 했는데 회사 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 그 즉시 정중하게 사과하고 다음에 식사 자리를 만들어 만회합니다. 아이한테 사과한다고 해서 부모가 책잡히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멋있다거나 쿨하게 비치죠. 부모든 자식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에게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고 우습게 보이는 거 아닙니다.

사사로운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IMF 체제 당시 투자에 실패해 큰돈을 날렸습니다. 파산지경에 막대한 빚까지 지게 됐죠. 호주에 유학 중이던 두 아이도 귀국했습니다. 학비 일부는 내지도 못했으니 아이들도 힘들었을 거예요. 집에 돌아오니 여기저기 빨간 차압 딱지들이 붙어 있고. 가정경제가 파탄나면 가정도 파탄나기 일쑤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우리 두 아이에게 쓴 편지가 2000통가량 됩니다(아이들이 한 답장은 100여 통). 주로 아이들 유학 시절이었죠. 당시 스트레스와 상실감이 너무 컸고,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죽고 싶었지만 국내에서 일을 벌이면 자식들에게 평생 상처가 될 것 같았어요.

영국 출장길에 일을 다 보고 나서 눈에 익은 한 고층빌딩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한참 배회하며 망설였습니다. 마침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 딸 수지가 보낸 편지가 있었습니다. “아빠.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줘 고마워요. 나 나름대로 한국에서 열심히 해 볼 게요. 그러니 아빠도 힘 내세요.”
거기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이국 땅 남의 빌딩 옥상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렇게 나를 격려해 주는 딸이 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을 겪어 봐 경제적 궁핍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다니던 회사가 망한 것도 아니었고요.

흐르는 눈물을 닦고 그 빌딩에서 내려와 귀국 길에 올랐습니다. 은행 빚 상환계획을 세워 보니 8년쯤 걸리겠더군요. 그 빚을 2년 앞당겨 다 갚았습니다. 또 귀국 이후 수면제 없이도 잠을 잘 잤습니다. 이 ‘사건’ 후 나를 대하는 아이들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신뢰가 더 깊어진 듯했습니다.

 
딸아이가 어쩌다 편지나 카드에 “아빠를 존경해요”라고 씁니다. 그 말 한 마디면 나는 뿅 가요. 나로서는 가장 영광스런 찬사입니다. 자식이 편지든 문자든 서면으로 존경한다고 쓴 것을 봤을 때의 그 행복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가까운 친구와 후배에게 “부러우면 지는 거니 자식에게서 그런 소리 한번 들어보라”고 자랑질을 하죠.

나는 존경한다는 말엔 닮고 싶다는 뜻이 담겼다고 봅니다. 딸에게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지금 이 모습을 잘 유지해 인생 후반전을 잘 마무리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만들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자식도 부모를 만듭니다.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 말은 가족관계에서도 황금률입니다. 오늘 아빠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 보세요.

[※ 참고: 그의 딸은 호주에서 귀국한 후 배화여중에 편입했다. 첫 학기 300명 중 석차가 100등이 넘었지만 민족사관고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부를 졸업했다. 현재 도이치뱅크 홍콩법인에서 투자금융부 매니저로 일한다. 유학 시절 「10대, 꿈을 위해 공부에 미쳐라」란 책을 냈다. 그는 딸에게서 들은 가장 기분 좋은 이야기로 “아빠 닮은 신랑감을 구해 달라”를 꼽았다. 그럴 때면 “그런 사람 찾기 어려우니 꿈 깨라”고 한다며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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