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주름」

 
늙어감에 대한 공포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치매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멀게는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다 타계한 유명 인사들 이야기부터 가까이는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집안 치매 어르신에 대한 눈물 없이 듣기 힘든 사연을 들으면 제아무리 창창한 젊은이라도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육체의 죽음만큼 슬픈 일이니까.

스페인 만화가 파코 로카의 「주름」은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 잘나가는 은행원으로 일했던 노인 에밀리오가 요양원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식들에게 등 떠밀리듯 요양원에 들어온 에밀리오는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신참 에밀리오에게 요양원 곳곳을 소개해 주는 넉살 좋은 고참 미겔은 양로원살이에 적응한 지 오래다.

매사 넉살 좋고 뻔뻔한 미겔이지만 요양원의 2층만은 두려워한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진 일명 금치산자 노인들이 누운 채로 갇혀 지내는 병실이 2층에 있기 때문이다. 에밀리오는 요양원살이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해져만 간다. 사방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인들뿐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에밀리오는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라고 진단해 주는 의사의 말도 믿지 못한다. 누가 그런 진단을 쉽게 믿을 수 있을까.

어느 날 주인공 에밀리오와 동료 노인들은 간호원들 몰래 자동차를 구해 요양원 탈출을 감행한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늙은 몸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노인들은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교통사고를 내며 금세 요양원으로 되돌아와 혼쭐이 난다. 기가 팍 죽은 노인들 앞에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던 노인이 한 할아버지를 흉기로 때리는 우울한 사건이 터진다. 이런 끔찍한 비극 또한 요양원에서는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요양원 노인들에게는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곧 사형 선고다.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죽음과 다름없다. 2층으로 보내는 여부를 정하는 테스트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인들은 필사적으로 서로 돕고 연습한다. 그럼에도 찾아오는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 에밀리오의 기억력은 하루가 다르게 희미해져만 간다.

어느 날부터 양복을 거꾸로 입기 시작하고, 요양원을 젊은 시절 다니던 은행으로 착각한다. 머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성질이 돋아 물건을 함부로 집어던지기도 한다. 마침내는 매일 함께 어울리던 미겔의 얼굴이 하얗게 잊혀 간다. 끝까지 부정하고 저항해 보지만 알츠하이머는 그렇게 한 노인의 기억을 집어삼켜 버린다.

그림 하나 대사 한 줄 없는 새하얀 공백의 페이지를 사이에 남겨 두며 「주름」은 끝을 맺는다. 잊는다는 것, 자신이 지워진다는 것.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채 속수무책으로 끌려 들어가는 망각의 세계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순서일 것이다.
이진 소설가 elbbubjinn@gmail.com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