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용 차량의 이상한 세제혜택

▲ 정부가 발표한 업무용 차량 세법 개정안을 두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혹시 당신은 고가의 회사차를 모는가. 혹시 사적으로 이용하진 않았는가. 만약 그래 왔다면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업무용 차량은 세제혜택이 상당히 많다. 당신의 차량이 ‘서민의 혈세’로 굴러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떤가. 이젠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가 이 문제를 잡겠다고 나섰지만 미봉책만 내놨다.

# 2011년, 한 대기업 오너가 위장 계열사를 통해 람보르기니 등 대당 수억원이 넘는 고급 수입차 3대를 리스해 자녀들의 통학 용도로 사용하다가 적발됐다. 법인 명의로 차를 굴리면 구입비용부터 유류비ㆍ수리비 등 유지비용까지 경비 처리가 가능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낸 세금이 재벌 자녀의 통학비로 쓰인 셈이다.

# 부실 대출로 은닉 재산을 추징당하고 있던 한 저축은행의 회장은 고가차를 26대나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직접 구입한 차는 한대도 없다. 대다수는 대출금을 못 갚은 중소기업 사장이나 자영업자들로부터 압류한 것이다. 재벌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오너들도 회사 명의로 고가 수입차를 구입해 굴리고 있다는 얘기다. 고소득 자영업자와 고급 전문직 등 개인 사업자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포르쉐,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이바흐…. 우리는 ‘억’ 소리 나는 슈퍼카들이 질주하는 모습을 서울 시내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고가차의 ‘고공행진’이 서울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다. 1억5000만원 이상 고가차의 올 1~4월 판매량은 3478대. 전년 동기 대비(1716대) 무려 102%나 증가했다. 1억~1억5000만원(전년 동기대비 증가율 36.8 %), 7000만~1억원(21.5%), 5000만~7000만원(25.6%) 등 다른 가격대와 비교하면 유별난 상승세다.

이유는 무분별한 세제혜택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를 법인 명의로 구입하면 차에 들어가는 구입비에서 유지비까지 모두 ‘회사 비용’으로 인정돼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업무용으로 활용돼 세제혜택을 본 고가차는 지난해 총 10만5720대(수입차 2억원 이상ㆍ국산차는 5000만원 이상). 이중 2억원이 넘는 차량의 전체 판매량(1353대) 중 업무용 판매(1183대) 비중은 87.4%에 달했다. 고가차의 ‘십중팔구’는 업무용 차량으로 판매된 셈이다. 특히 초고가의 수입 차량일수록 업무용 판매 비중이 높았다. 시가 5억9000만원에 달하는 ‘롤스로이스 팬텀’의 경우, 지난해 총 5대가 판매됐는데 100% 업무용으로만 팔렸다. 심지어 일부 고가 브랜드는 세제혜택 사실을 홈페이지에 알리기도 했다. 국민의 혈세를 ‘판촉’에 활용한 셈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가 뭇매를 맞았다. 업무와 관계도 없는 고가차를 구입해 이용하면서 세제혜택을 받는 건 탈세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를 방치하는 정부의 모습은 각종 증세로 서민으로부터 세금을 쥐어짜던 것과 대조를 이루며 공분을 샀다. 논란을 의식했던지 정부는 8월 6일 발표한 ‘2015 세법개정안’에 업무용 차량을 포함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이렇다.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 구입ㆍ유지비의 50%까지 경비 처리를 해준다. 나머지 50%는 운행일지를 확인해 업무용 사용비율만큼 경비를 처리한다. 회사 로고를 부착한 차량은 운행일지가 없어도 100% 경비로 처리가 가능하다.” 업무용 차량 구매에 ‘조건’을 달아 사적私的 사용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이 뜨겁다. 권순조 국회입법조사처 행정사무관은 “개정안에는 몇가지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봤다. “개정안은 임직원만 운전이 가능한 자동차 보험의 가입여부를 기준으로 삼았다. 생각해 보자. 그럼 다른 사람은 사용 못하나. 회사 로고를 부착하면 업무일지를 쓰지 않아도 업무용 차량으로 보겠다고 했다. 로고를 부착하면 업무용이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먼저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을 들여다봤다. 전문가들은 보험의 도입만은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차를 운행하는데 있어 ‘보험 가입’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가입만으로 50%의 기본공제혜택을 주는 건 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찬 가톨릭대(경영학) 교수는 “해당 사업주가 보험에 가입하고 차를 사적으로 타면 그만인 구멍 뚫린 규제”라며 “세금탈루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 되레 공식적인 탈루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꼬집었다.

구멍 뚫린 세법 개정안

회사 로고만 붙이면 100% 경비처리 가능한 것도 문제다. 이유는 간단하다. 로고 부착은 상호가 외래어인 경우가 많고, 개인사업자의 상호는 인지도가 높지 않아 업무용 차로 인식되기보다 외관 튜닝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회사 로고를 붙였다고 사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여기에 운행일지를 허위로 작성하면 적발이 어려울뿐더러 적발되더라도 세제혜택만 취소될 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상적으로 차량을 이용하던 사업자들이다. 이번 개정안으로 추가 부담을 지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권태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영세 사업자에게는 임직원 전용보험 가입, 운행일지 작성, 회사 로고 부착 등이 오히려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관련 업계와 시민단체는 업무용 차량의 구입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세제혜택을 더 못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3000만원을 상한선으로 설정하고, 1억원짜리 업무용 차량을 구입해도 세제혜택은 3000만원에 준하는 수준으로 해주자는 거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 구입비에 상한선을 두고 유지비 부문은 업무용 운행 비율만큼 인정하되 검증을 철저하게 하면 세금탈루를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멍 뚫린 세법 개정안을 ‘구매가 상한선’으로 막자는 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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