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의 함정
감각 있는 소비자라면 자동차 개소세 인하 대책이 나올 시점을 얼추 짐작하게 생겼다. 여기저기서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고, 소비심리가 바닥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자동차 회사들이 무이자 할부나 유류비 지원 등을 내세우며 판촉활동을 벌이면 얼마 안 가 개소세 인하 대책이 나오곤 했으니. 올 들어서도 상황이 유사하게 진행되다 8·26 소비 활성화 대책으로 발표됐다.
소비 제약하는 요인을 제거해야
차값이 비쌀수록 세금을 더 깎아준다니 일단 차는 더 팔릴 것이다. 재고가 정리되고 생산라인이 바빠질 테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인 경제성장률에도 기여할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4분기 성장률을 0.1%포인트, 연간 성장률은 0.25%포인트 끌어올릴 것으로 본다. 문제는 그 약발이 일시적이며 근본적인 소비 활성화 대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금이 깎이는 몇달 동안은 자동차 판매가 증가하겠지만, 세금감면 기간이 지나고 나면 판매량이 급감할 것이다. 아직 마이카(My car)를 장만할 여유가 없는데, 차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는데 세금감면 시기를 놓치지 말자며 무리했다간 가계 빚만 키울 수 있다. 경제 상황과 사회 여건은 과거와 사뭇 다른데 과연 똑같은 레퍼토리가 통할까.
소비 침체가 벌써 몇년째 이어지는 것은 메르스 여파 등 일시적인 심리의 문제이기보다 정체된 가계소득과 소득격차, 위험수위인 가계부채, 고용 불안과 노후 불안 등 구조적 요인이 더 크다. 청년층은 취업을 못해, 30~40대는 치솟는 전셋값 등 주거비와 사교육비 부담으로, 50~60대는 노후가 걱정돼 씀씀이를 줄이는 형편이다. 이처럼 소비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을 해소해 주길 국민은 바라는데 정부는 낡은 단기 처방에 급급하고 있다.
자칫 자동차와 대형 가전제품 등 개소세 인하로 1200억~1300억원의 세수만 줄어들고 기대한 만큼 소비수요는 살아나지 않아 정부 재정에 부담만 지울 가능성이 높다. 한시적이라지만 개소세 인하 조치는 비과세와 세금감면 조항을 정비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어긋난다. 민간소비를 늘리려면 가계소득을 증대시켜 주어야 한다.
근로자 임금을 중심으로 가계소득이 늘어나야 소비(유효수요)가 증가하고, 그에 맞춰 상품을 더 만들기 위한 기업투자도 확대돼 경제가 성장의 선순환의 고리를 이어갈 수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지난해 취임 초기 이런 ‘소득주도성장론’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급하다고 현대·기아차와 삼성, LG 등 몇몇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세금 깎아주기보다 조금 더뎌도 보다 많은 근로자 가계와 동네 자영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근본 처방을 찾아야 한다.
가계부채 더 키울까 우려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며 ‘빚 내서 집 사라’고 부동산대출 규제를 풀어 가계부채를 부풀린 최경환 경제팀이다. 소비 살리겠다며 세금 깎아주니 ‘캐피털 할부 끼고 차 사라’고 부추겨 가계부채를 더 키우고 재정까지 멍들게 할까 걱정스럽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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