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의 엉뚱한 주장

▲ 기획재정부는 다른 국가와의 통상 문제로 경비처리 상한선을 설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사진=뉴시스]
‘구매가 상한선 설정’. 고가 업무용 차량의 과한 세제혜택을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정부는 활용하지 않고 있다. “수입차를 차별해 통상마찰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상한선 설정’은 모든 차량에 적용돼 수입차를 차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재부의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 구입ㆍ유지비의 50%까지 경비를 처리해준다. 나머지 50%는 운행일지를 확인해 업무용 사용비율만큼 경비를 처리한다. 회사 로고를 부착한 차량은 운행일지가 없어도 100% 경비로 처리해 준다.”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업무용 차량의 세제개정안 골자다. 자동차 업계는 이번 개정안을 두고 알맹이가 빠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무용 차량으로 인정되는 차량의 가격에 상한선을 두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상한선’을 적용하고 있다. 여ㆍ야 의원들이 상한선을 적용한 입법을 제안하고, 언론이 일제히 ‘알맹이가 빠진 개정안’이라고 비판하자 기재부는 반박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차량배기량ㆍ금액상한 등으로 손금인정 기준을 정할 경우 수입차를 차별하는 것으로 인식돼 통상 마찰 소지가 있다.

유사한 내용의 기존 의원입법법안들도 통상마찰 우려로 국회에서 폐기되거나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상한선을 둘 경우 고급 수입차를 차별한다는 인식을 줘 미국ㆍ독일ㆍ일본 등 고급차 수출국들과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기재부의 설명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상한액 설정을 차별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상한액 설정은 차량의 배기량ㆍ가격과 무관하게 업무용차 구입비용의 일정금액까지만 경비로 인정하는 것이다. 특정한 차량에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권태환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간사는 “기재부는 한ㆍ미 FTA, 한ㆍ EU FTA 협정문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어떤 조항에 걸리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으며 협정문 어디에도 주권국가의 조세정책을 막을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고 꼬집었다. 사례도 있다. 민홍철(새정연) 의원은 2013년 배기량 2000cc와 차량가격을 기준으로 업무용 차량의 경비지원을 차등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통상 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폐기됐다. 특정 배기량ㆍ특정 가격의 차량에 차등적으로 적용돼서다.

“통상문제로 번지지 않을 것”


당시 이 법안에 대해 송대호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배기량이나 가격을 기준으로 필요 경비 산입에 차별을 둘 경우 FTA 협정 위반 등 통상마찰을 유발할 소지가 있다. 때문에 배기량 가격과 무관히 모든 업무용 차량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한도를 설정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모든 업무용 차량을 규제하는 ‘상한선’ 방식은 통상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발의된 입법안은 모두 송 전문위원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다.

기재부는 고가 업무용 차량에 과도한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는 비판에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제혜택과 무관하게 어차피 고가 업무용 차량을 샀으니, 내야 할 세금은 많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세제혜택분을 빼더라도 고가 업무용 차량을 사용하는 사업주가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많이 버는 사람에게 많이 거두겠다’는 공평과세 원칙에 어긋난다. 실제로 기재부 개정안에 따르면 2억5000만원의 최고급 세단(임직원 전용보험 가입시)을 타면 5년간 세금 6766만원을 아끼는 반면, 1600만원짜리 소형차의 경우엔 726만원의 혜택을 줄 뿐이다. 고소득 사업자에게 여전히 유리한 구조다.

기재부는 올해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서민ㆍ중산층과 중소기업의 세 부담을 줄이고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부담은 늘렸다고 설명했다. 조세를 통해 ‘소득재분배 기능’을 작동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업무용 차량에서는 조세의 재분배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서민들의 ‘유리지갑’만 또 털리게 생겼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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