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체의 이상한 연봉방정식

▲ 유가가 하락하고 경기가 바닥일 때도 일부 정유사 임원들의 평균연봉은 고공행진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기업의 흑자폭이 커지면 임직원의 임금은 올라야 마땅하다. 반대로 실적이 하락세를 타거나 적자폭이 커지면 임직원 역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여기 기업실적이 하락세를 탈 때 ‘임금인상파티’를 벌인 곳이 있다. 일부 정유업체들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유가 때문에 못살겠다’며 제도개선을 은근히 요구한다.

지난해 유가 급락으로 최악의 실적을 냈던 정유사들이 올해 상반기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영업이익(개별기준)을 보면 SK에너지 7860억원, GS칼텍스 9442억원, 에쓰오일 6399억원, 현대오일뱅크 1927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5년 기준으로 가장 호황기였던 2011년 수준을 회복한 셈이다. 유가 반등에 따른 재고 손실이 줄고, 정제마진이 개선된 덕분이다.

하지만 정유업계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올 하반기 실적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유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 중국의 성장률마저 둔화하고 있어, 불확실성이 한층 더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유업계 안팎에서 “정부가 유가로 인한 타격을 줄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 대안으로 나오는 게 ‘가격고시제’의 부활이다.

정부가 최고가격을 정하면 정유사가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가격을 결정하는 건데, 1997년 ‘석유시장 자유화’로 정유사들이 자율적으로 제품가격을 정할 수 있게 되면서 폐지된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가 폐지된 후에도 석유공사가 공급가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만큼 국제유가를 반영하다가 폭탄을 맞느니 차라리 가격고시제를 시행해 안정적인 경영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게 정유업계의 주장이다.

이런 제도나 방식을 도입하면 유가급등시엔 소비자 가격이, 유가하락시엔 정유사 가격이 안정화될 수 있다. 문제는 정유사들이 유가의 급등으로 막대한 정제마진을 챙길 땐 가만히 있다가 저유가로 손해를 보면 “대안을 마련해 달라”며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는 거다. 더구나 일부 정유사는 실적하락을 하소연할 처지도 아니다. 실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국제유가 폭락(정제마진 하락), 글로벌 경기침체(석유제품 수요 하락) 속에서도 버젓이 임원과 직원의 연봉을 올린 곳들이 있어서다.

▲ [참고 : 정유4사의 직원 평균 연봉은 직원 수가 가장 많은 정유부문 남자직원 기준]
최근 5년간(2010~2014년) 정유4사의 영업이익을 분석해 보면 2011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타고 있다. 물론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110.53달러로 2011년 4월(배럴당 113.93 달러) 이후 최고치로 오른 2013년, 일부 정유사의 영업이익이 흑자전환(GS칼텍스ㆍ현대오일뱅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중국과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전문가들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7.7%와 2.2%를 달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2011년 이후 하락세’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일부 정유사는 임원(등기이사)과 직원의 연봉을 올리느라 바빴다. 겉으론 실적악화를 운운하면서 속으론 연봉인상 파티를 벌인 셈이다.

국내 2위(매출 기준) 정유업체 GS칼텍스는 2013년 영업이익이 잠깐 반등했던 걸 제외하면 2011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탔다. 당기순이익은 2012년부터 꾸준히 하락해 2014년엔 마이너스(-6836억원)로 돌아섰다. 반면 임원 연봉은 2013년까지 꾸준히 올라 평균 10억원을 훌쩍 넘겼다. 2014년 소폭 줄어들었지만 이는 오를 만큼 오른 후였다.

GSㆍ에쓰오일, 수익-연봉은 무관

GS칼텍스의 임원 평균 연봉은 정유4사 가운데 가장 많다. 올해 상반기 임원 평균 연봉은 4억5690만원. 연으로 환산하면 대략 9억원선이다. 정유업계 1위 SK에너지 임원 평균 연봉보다 약 2배가 많다. GS칼텍스 임원들의 ‘경영성적표’가 훌륭했던 것도 아니다. 이 회사는 2012년 일본 에너지기업과 합작해 1조원대 파라자일렌(PX) 설비 증설을 결정했다가 PX시황 악화로 3년째 투자를 보류 중이다.

에쓰오일도 2011년 이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에는 둘 다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하지만 에쓰오일의 임원 평균연봉이 줄어든 건 2012년뿐이다. 이 역시 당시 취임한 나세르 알 마하셔 사장의 연봉이 100% 반영되지 않은 결과다. 다시 말해, 에쓰오일의 임원 연봉은 2011년 이후 줄어든 적이 없다는 거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로 돌아섰을 때에도 임원 평균 연봉은 6억4910만원으로 2013년보다 되레 올랐다. 올해 상반기 임원 평균 연봉은 GS칼텍스 다음으로 많은 3억1055만원이다. 이 기간 주주들만 쓴맛을 봤다. 에쓰오일의 주가는 2011년 4월 고점(1주당 17만원)을 찍은 이후, 지난해 11월 3만7500원대까지 계속 하락했다. 8월 25일 현재 주가는 5만5800원으로 2011년 당시 주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한 임원의 고액연봉을 흠잡아선 안 된다. ‘기업의 별’ 임원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의 실적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면 판단을 달리 해야 한다. 상장사라면 더욱 그렇다. 실적은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주주들은 이 때문에 손해를 봐서다. 실적이 곤두박질쳤는데, 임원이 높은 임금을 받았다면 ‘모럴해저드’ 논란에 불이 붙을 수밖에 없다. 실적이 악화될 때마다 등장하는 일부 정유사의 ‘제도개선책’이 볼멘소리로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적하락기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조치는 ‘허리띠 졸라매기’다.

Issue in Issue | SK에너지ㆍ현대오일뱅크의 다른 선택
실적 줄자 성과급도 반납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실적악화와 무관하게 임원들의 연봉을 끌어올린 반면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는 그나마 합리적인 결정을 했다. 업계 1위인 SK에너지는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꾸준히 떨어졌다. 그 기간 이 회사 임원의 평균 연봉은 2013년(약 1000만원 인상)을 제외하곤 꾸준히 줄어들었다. 실적에 따라 연봉을 달리 책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대오일뱅크는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사업보고서만 보면 가장 황당하게 임원 연봉을 책정했다. 실적이 가장 좋지 않았던 지난해 임원 평균연봉이 최고점을 찍은 것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1년 당시에도 현대오일뱅크의 일부 등기이사는 연봉을 아예 받지 않았다. 권오갑 당시 사장의 연봉(5억8000만원) 때문에 ‘임원의 평균임금이 오르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발생했다.

2012년엔 권오갑 당시 사장이 영업이익 하락의 책임을 지고 성과급을 반납하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경영상황이 신통치 않을 땐 임원 연봉을 올리지 않거나 때론 임원이 성과급을 반납한 셈이다. 현대오일뱅크가 4년 연속 정유업계 영업이익률 1위를 점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란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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