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랙 호크 다운 ❹

▲ 스캇 감독이 의도적으로 감춘 진실을 모르면 블랙 호크에 달려드는 소말리아인들이 악령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블랙 호크를 향해 달려드는 소말리아 민병대원들과 민간인들은 미군 최정예 부대원들의 조준 사격에 속절없이 죽어나간다. 인디언들이 서부개척길에 나선 백인들의 포장마차를 포위하고, 괴성을 지르며 도끼를 휘두르다 미국 기병대에게 떼죽음당하는 서부영화의 한 장면과 흡사하다. 모가디슈 전투에서 소말리아인의 사망자 수는 집계조차 되지 못한다. 기록에 따라 500명에서 1000명까지 천차만별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영화는 미군병사 하나하나의 생명은 의미 있게 연출하지만 소말리아인의 생명은 아무런 가치 없는 소모품쯤으로 그린다. 영화에서는 작전에 임하는 부대원들에게 ‘민간인들에게 발포하지 말라’는 엄격한 지시가 내려지고, 시가전의 절박한 상황에서도 미군 병사들은 소말리아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실제 15시간에 걸친 처절한 전투가 끝난 뒤, 모가디슈 바카라 시장에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한 수백구의 소말리아인 시체가 나뒹굴었다. 미군 사령부의 대변인 격이었던 데이브 스턱웰(Dave Stockwell) 대위는 이를 두고 ‘사소한(regrettable) 일’이라고 발표했다가 물의를 일으켰다. 이후 그는 사망한 부녀자와 어린아이가 모두 ‘UN군의 차량을 포위한 전투원’이라고 고쳐 발표했다.

서부영화에서는 인디언들이 왜 백인들을 죽이려 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마찬가지로 스캇 감독은 소말리아인들이 미군의 블랙 호크 헬리콥터에 보인 적개심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미군 사령부 대변인도 부녀자와 어린이까지 미군차량을 저지하고 나서야 했던 배경을 함구한다. 그 이유가 생략되면 소말리아인들은 인간이 아닌 ‘악령’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반면 부상당한 몸으로 의연하게 정교한 사격을 가해 악령들을 하나씩 거꾸러뜨리는 레인저 부대원의 모습은 영웅적이다.

하지만 미군과 스캇 감독이 감추고 싶었던 진실을 알면 모든 게 달라진다. 사실 소말리아인들은 처음부터 미군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군의 개입 초기에 소말리아인들은 미군을 자신들을 도와주러 온 ‘친구’로 여기고 환영했다.

하지만 미군의 정책들은 일방적이었다. 소말리아인은 자신들의 의사가 무시당하자 미군에 반발했고, 미군은 무력으로 대응했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은 1993년 10월 3일 어떤 상황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사건의 원인은 3개월 전인 7월 12일 발생했다. ‘피의 월요일(Bloody Monday)’ 사건이라 불리는 그날, 소말리아 각 파벌의 원로대표들이 한 건물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소말리아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건물을 미군의 블랙 호크가 공격했다. 벙커파괴용 토우 미사일을 발사하고, 기관포 사격을 퍼부었다. 순식간에 소말리아인 54명이 죽었고,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격분한 소말리아 민병대는 9월 9일 미군 주둔지를 공격한다. 미군 블랙 호크는 그 보복으로 다시 소말리아 민병대의 진지를 초토화한다. 이게 바로 소말리아인들이 미군과 블랙 호크에 보인 적개심의 원인,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 어쩌면 고의적으로 누락한 진실이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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