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옛 한전부지 낙찰 1년 後

▲ 강남구 범구민 비상대책위원회와 강남구민들이 서울 강남구 옛 한전부지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9월,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을 거머쥔 기업이 있다. 현대ㆍ기아차다. 부지 매입 금액이 무려 10조5500억원. 이 회사는 이 부지에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를 만들겠다는 비장한 계획도 세웠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어떻게 변했을까.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과 함께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강남. 1970년 영동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대기업들의 강남 행렬이 이어졌고 한국 IT산업의 발상지인 테헤란 밸리가 형성됐다. 1990년대 말에는 닷컴 열풍의 중심지로, 또 2000년대 벤처시대를 이끈 강남은 한국 경제의 ‘견인차’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기세가 수그러들었지만, 그 위상은 여전하다. 그리고 2014년 8월. 강남에 마지막 남은 대형 ‘금싸라기 땅’으로 알려진 한국전력공사 본사 부지가 경매 시장에 나왔다. 한전 본사가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남은 땅이다. 면적만 7만9342㎡(약 2만4000평), 공시지가는 1조4837억원, 감정가액은 3조3346억원 규모의 대형 부지였다.

입찰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이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이 국내 재계 서열 1ㆍ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으로서는 탐이 날 만한 부지였다. 이미 2011년 삼성생명을 통해 한전 옆 옛 한전감정원 본사 부지를(1만988㎡)를 매입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업계는 입찰에 성공하면 삼성이 두 부지를 합쳐 ‘삼성타운’을 조성할 것으로 봤다.

현대차 역시 한전 부지가 필요했다. 현대차 주요 계열사들이 양재동과 계동에 흩어져 있어 업무 효율을 높지 않다는 불만이 있었다. 이를 통합할 수 있는 신사옥이 필요했다. 신사옥을 위해 현대차는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뚝섬 옛 삼표터미널 부지에 2조원을 투자해 110층 규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2012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엎어졌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강변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내용의 ‘한강르네상스’를 추진했지만 이 계획이 박 시장 취임 이후 전면적인 재검토에 들어간 것이다.

잠정중단 상태에 들어간 현대차의 뚝섬 프로젝트는 서울시가 ‘초고층 건축 관리기준’을 내놓으면서 결정타를 입었다. 상업기능이 몰려 있는 도심과 부도심에만 50층ㆍ200m 이상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해서다. 공장터였던 뚝섬 부지는 이 요건을 충족할 수 없었다. 결국 현대차는 사업 포기를 발표하고 한전 부지로 눈을 돌렸다.

재계 서열 1ㆍ2위의 눈치싸움은 흥미로웠다. 경쟁 입찰방식으로 더 높은 가격을 써내는 기업의 승리였다. 그리고 2014년 9월 18일. 승자가 가려졌다. 현대차가 삼성을 꺾었다. 한전은 서울 삼성동의 본사 부지 매각 입찰 결과, 현대ㆍ기아차, 현대모비스 컨소시엄이 최종 인수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써낸 인수금액은 10조5500억원. 반드시 한전 부지를 갖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드라마틱한 입찰, 그 후…

감정가의 3배, 공시지가의 10배나 되는 금액을 써낸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예상을 뛰어넘는 낙찰 가격에 승자의 저주에 걸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현대차는 크게 만족했다. 이 회사는 이 부지에 통합 사옥인 ‘글로벌비즈니스 센터(GBC)’를 지어 현대ㆍ기아차의 자동차 메카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처럼 본사와 주변에 자동차 전시관ㆍ박물관 등 테마파크도 만든다는 거다. 이는 독일 볼프스부르크 소재 폴크스바겐의 본사 ‘아우토슈타트’나 BMW가 뮌헨에 만든 ‘BMW벨트’ 등에서 따온 아이디어다.

개발 계획도 민첩하게 세웠다. 현대차는 최종 개발구상 제안서에서 한전부지의 도시계획을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해 통합사옥과 전시컨벤션센터, 공연장, 숙박시설, 판매시설, 업무시설, 전망대 등을 짓겠다고 밝혔다. 건폐율 38.42%, 용적률 799%을 적용해 연면적 96만㎡에 전시컨벤션센터와 호텔 등으로 쓰일 62층 건물과 통합사옥으로 사용할 115층(최고높이 571m)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이는 롯데그룹에서 송파구에 짓고 있는 123층 롯데월드타워보다 16m 높다. 현대차는 GBC 건설과 운영을 통해 총 262조6000억원의 생산유발과 132만4000만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부지에서 그룹의 미래를 내다봤다는 얘기다.

입찰 후 1년이 지난 지금, 현대차의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옛 한전 건물에는 현재 현대차 로고가 달려 있다. 현대차가 판단하는 본격적인 착공 예정 시기는 내년 하반기. 그런데, 지금 그 착공 시기가 뒤로 늦춰질 가능성이 생겼다. 공공기여금의 사용처 때문이다. 공공기여금이란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과정에서 토지 용도변경이나 용적률 상향 조정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주는 대신 기반시설 부지나 설치비용을 사업자로부터 받는 것을 말한다. 이 부지에 대한 공공기여율은 36.75%가 적용됐다. 제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하는 토지면적을 전체부지로 환산해 산정했다. 이에 따른 공공기여금은 1조7030억원. 서울시와 강남구가 이 금액을 두고 다투기 시작하면서 착공에 먹구름이 끼고 말았다.

갈등의 발단은 이렇다. 서울시는 5월 ‘국제교류복합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을 기존 옛 한전 부지 일대에서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까지 넓혔다. 공공기여금을 송파구 일대 개발에도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를 두고 강남구가 반대하고 나섰다. 강남구는 1조7000여억원 공공기여금을 영동대로 개발에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동대로에는 2026년까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KTX 등 철도노선 6개가 신설될 예정인 만큼 지하 광역철도망과 대규모 복합환승센터를 지으려면 1조7000억원 자금도 부족하다는 얘기다.

옛 한전 건물에 달린 현대차 로고

둘의 갈등으로 발목이 묶인건 현대차였다. 현재 삼성동 한전 별관동 지하에는 삼성동 일대 6035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3924㎡(약 998평) 규모의 삼성변전소가 있다. 이 자리는 현대차의 115층 사옥이 들어서는 곳이다. 변전소를 옮기는 데에는 1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현대차는 착공 전에 변전소를 이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허가권을 가진 강남구가 현대차의 변전소 이전 불가를 선언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지난해 9월 현대차 그룹이 한전 부지를 매입했을 때 강남구에서 행정지원을 아낌없이 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허가할 수 없다”며 “서울시가 강남구 요구에 따라 공공기여금을 영동대로 개발에 쓴다면 (법적 문제가 있지만) 구청장이 책임지고 허가해줄 수도 있다”고 전했다.

공공기여금 1조7000억원을 강남구에 써야지만 변전소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얘기다. 강남구는 이어 삼성동 한전 부지를 포함, 코엑스와 잠실 일대 국제교류복합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 고시에 명백한 위법사유가 있다며 취소소송 등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말 많고 탈 많은 옛 한전부지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