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국가채무, GDP의 40% 시대

▲ 재정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나라살림이 망가진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사진=뉴시스]
2012년 말과 2013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미국에선 연방정부 예산이 일정 부분 자동 삭감되는 ‘시퀘스터(sequester)’ 발동 위기에 직면한다. 연방정부 지출삭감 문제를 놓고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 내 다수파인 공화당이 대립해서다. 결국 오바마가 의도한 고소득층의 소득세율을 올려 세수를 확충하고, 공화당이 원했던 재정감축 계획을 일부 조정하는 선에서 합의함으로써 ‘재정절벽(fiscal cliff)’ 상황은 면했지만 세계 각국이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칠까봐 주시했다.

미국이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해 연방정부의 재정지출에 한도를 정하고 의회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시퀘스터가 작동되는 균형예산법을 제정한 것은 1985년. 달러를 마구 찍어내 돈을 쓰다 보면 달러화 가치가 떨어져 미국이 2등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였다. 균형예산법이 시행되는데도 적자가 늘어나자 새로운 재정사업을 벌일 때 재원 계획도 함께 내놓도록 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나름 성과를 거둬 재정적자가 감소하자 2002년 페이고 제도를 폐지했더니 재정적자는 이내 다시 불어났다. 이에 2011년부터 예산통제법에 근거해 해마다 향후 10년간 재정지출 절감 목표를 세워 실행하고 있다. 페이고 원칙도 2010년 항구적으로 부활시켰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1980년대부터 국가채무 등 총량적 재정지표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더욱 촘촘하게 강화하는 추세다. 독일은 신규 채무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0.35% 이내로 유지하도록 헌법에 명시했다. 영국도 GDP 대비 순채무 비율을 전년도보다 낮춘다는 재정운용 원칙을 2010년부터 시행 중이다. 스웨덴은 GDP 대비 1%의 구조적 재정수지 흑자를 달성해야 한다고 예산법에 규정했다.

재정준칙에 있어 한국은 후진국이다. 쓰고 남는 세계잉여금을 어떤 순서로 쓸 지에 관한 ‘수입준칙’만 겨우 국가재정법에 명시했지 ‘지출준칙’은 행정계획이라서 정부 재량권이 많다. 2008년부터 예산안과 함께 발표하는 5년 단위 국가재정 운영계획도 정권이나 재정여건 변화에 따라 균형재정 달성 시점이 오락가락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당시 2012년으로 잡았던 균형재정 달성 시점이 이듬해 ‘2014년 이후’로 2년 늦춰졌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다시 3년 뒤인 2017년(재정적자 비율 ±0.5%)으로 후퇴했는데, 지난해 계획에선 2017년 재정적자 비율이 1.3%, 올해는 2.0%로 거듭 뒷걸음쳤다. 3년 연속 세수결손이 생겨 국채를 발행해 메꾼 판에 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며 재정지출까지 대거 늘렸지만 성장률은 부진한 탓이다. 국회더러 페이고 원칙을 입법해 달라고 요청해온 정부 스스로 재원 대책 없이 씀씀이를 늘린 결과이자 대통령 뜻에 따라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한 산물이기도 하다.

급기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온 40%선을 넘게 생겼다. 내년 국가채무가 올해보다 50조원 불어난 645조원, GDP 대비 비중은 40.1%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2017년 국가채무는 692조원으로 5년 새 249조원(56%) 불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늘어난 국가채무 143조원(48%)보다 훨씬 많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저출산ㆍ고령화 여파로 2018년부터 ‘인구절벽’이 예고되는 판에 재정절벽 상황까지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국민세금을 허투루 못 쓰게 차단하는 재정개혁에 나설 때다. 불요불급한 예산의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페이고 제도를 정착시키자. 정부나 정치권이 빚을 내서라도 쓰고 보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출준칙을 시급히 법제화해야 한다.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을 의식해 미적대다간 나라살림은 그리스처럼 급속히 망가질 수 있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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