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파업 거꾸로 보기

노조파업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데다 기업실적마저 신통치 않은데 ‘임금 더 달라’며 파업을 단행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거다. 뒷주머니 차고 때만 되면 임금투쟁을 벌이는 귀족노조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마녀사냥이 정당한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노조의 주장을 찬찬히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의견도 있어서다.

▲ 대기업 노조가 자신들의 임금 인상만을 위해서만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비판이 많다.[사진=뉴시스]
최근 일고 있는 파업의 물결은 크게 세 갈래다. 금호타이어,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계, 현대차 파업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사간 임금단체협상 교섭이 결렬돼서다. 파업은 법적으로 보장된 노조의 권리다. 하지만 최근 파업을 단행한 기업의 노조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경기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는데다 기업실적까지 신통치 않은데, 임금 더 받겠다고 단체행동을 한다는 거다.

노조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가장 먼저 파업에 들어간 금호타이어의 상반기 실적을 보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6%, 영업이익은 -45.4%, 당기순이익은 -50.5%였다. 지난해 워크아웃 졸업 후 실적이 확 떨어진 거다. 현대중공업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조금 늘어났지만 지난해 영업손실(약 2조원)을 감안하면 내세우기 어려운 수준이다. 실제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마이너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현대차 역시 실적변화는 거의 없지만 엔저 효과, 수입차 공세 등 변수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을 단행하는 노조의 행동은 무리수로 보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 노조가 ‘임금인상’ ‘밥그릇 지키기’에만 전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갈수록 거세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구나 최근 노조는 ‘귀족노조’의 행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먼저 현대차 노조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지난해 8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1만5000명 중 4000명의 정규직 전환을 사측과 합의했다.

그런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해 9월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을 인정받아 정규직 전환의 길이 열렸다. 당연히 이전 합의는 무효화했어야 했다. 하지만 올해 1월 현대차 노조의 상위 노조인 금속노조는 합의의 내용과 절차를 모두 존중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초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금속노조 사무실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인 이유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최근 노조원의 파업을 유도하기 위해 ‘상품권’을 내걸어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뭇매를 맞았다. 사측이 복수노조에 자금을 지원해 노조활동을 무력화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조 탄압이 심하다 보니 단위노조에서 선택한 자구책이었다”며 “그 방법이 꼭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 역시 마찬가지다.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말 겨우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이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성과급과 업계 최고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사측도 이를 약속한 바 있다. 물론 약속은 지켜야 한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노사가 이렇게 빨리 샴페인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 워크아웃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은 국민 돈이기 때문이다. 파산해야 할 기업을 살려준 건 국민인데 그 열매를 대기업 노사가 나눠 먹겠다고 아우성 치는 건 전형적인 모럴해저드라는 얘기다.

여실히 드러난 ‘귀족노조’ 실태

이 때문인지 진보진영 학계 안팎에선 “노조가 갈 길을 잃었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88만원 세대」의 저자이기도 한 우석훈 국민경제연구센터 소장은 “노조의 사회적 연대가 약해졌고, 과거 노조를 지배했던 순수한 철학도 많이 퇴색해 이젠 임금만 남았다”며 “노조는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공익적 기능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우석훈 소장은 “프랑스 노조는 청년실업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스웨덴 노조는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했다”며 “그 결과 두 국가에서 노조를 보는 청년들의 시각이 달라졌는데, 과연 어떤 노조가 더 오래 갈지는 뻔하다”고 덧붙였다. 노조의 성공은 임금인상만이 아니라 공공성과 명분 등을 전제로 한 사회적 연대에 달려 있다는 거다.

중소기업연구원에서 대기업을 비판해온 김익성 동덕여대(EU통상) 교수도 “현재의 노조가 전체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않는 귀족노조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며 “노조는 사측과 적대적 공생관계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학계나 싱크탱크에서 비판을 제기하려 하면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조가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학자들은 노조가 ‘귀족노조’로 있으면서 현실 문제 비판에 무뎌진 탓도 있지만, 외부 요인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김익성 교수는 “레드콤플렉스가 맞물려 정부도 사회도 노조의 정치세력화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임금협상권이 있는 산업별 노조를 만들지 못하니까 다른 얘기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사회가 노조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니 노조는 책임감이 없어지고, 임금협상만을 외치는 ‘골칫거리’로 전락했다는 거다.

조원희 국민대(경제학) 교수는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광풍 속에서 산별노조의 꿈이 깨지고, 연대보다는 개별 노조로 살아남기에 바빴기 때문”이라며 “이후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가 커졌고, 그 속에서 대기업 노조는 나름의 단 열매를 맛 봤으니 변화도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 현대차는 감정가의 3배나 높은 가격에 한전부지를 매입했지만 이를 문제삼은 이들은 많지 않았다.[사진=뉴시스]
노조가 이런 지적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남정수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노조가 자기 이익에 만족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한다”며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위한 투쟁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민주노총의 그런 의지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왜 귀족노조라는 대형 사업장 노조들이 민주노총에 남아 있겠는가”라며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 조직형식이 가진 한계, 역사적 한계가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노동운동 초심 찾아야

하지만 노조의 이런 잘못 때문에 노조의 활동까지 어려워져선 곤란하다는 주장도 있다. 노조에 ‘회사가 힘들다고 목소리도 내지 말라’는 건 과한 처사가 아니냐는 거다. 그렇다고 노조의 주장이 아예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의견도 있다.

첫째는 사내유보금 주장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크게 늘어났다. 올해 상반기 기준(개별재무제표 기준)으로 현대차는 43조3447억원, 현대중공업은 12조5432억원, 대우조선해양은 1조4057억원, 금호타이어는 4313억원의 이익잉여금을 쟁여놓고 있다. 노조 측은 기업곳간에 쌓아둔 사내유보금을 왜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용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오너와 경영진은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수조원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 붓는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른 게 아니냐는 거다.

일례로 현대차는 영업이익이 4년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음에도 올해 주식배당금을 지난해보다 54% 늘린 주당 3000원씩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기아차도 43% 올린 주당 1000원의 배당금을 결정했다. 결국 최대주주인 오너일가만 배를 불린 셈이다. 한전부지를 감정가의 약 3배인 10조5500억원에 사들인 것도 무리한 경영전략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둘째는 임금피크제 갈등이다. 사실 최근 노조가 파업을 단행한 건 ‘임금피크제’와 관련이 깊다. 금호타이어만 해도 임단협 내용에는 사실상 합의했지만, 임금피크제를 두고 이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노조원들의 실질적인 밥줄이 달려 있는 만큼 무조건 생떼를 쓴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거다.

강수돌 고려대(경영학)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정부와 기업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기업들은 사내유보금 700조원으로 1년간 연봉 5000만원짜리 일자리를 1400만개 만들 수 있다는 식으로, 정부는 국민 소득을 올려주면 경제가 돌아간다는 걸 인정하는 식으로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당신은 노조의 주장을 얼마나 들어봤는가. 노조가 파업하면 무조건 ‘마녀’로 몰아가진 않았는가. 귀족노조도 문제지만 파업이라면 혀부터 끌끌 차고 보는 사람들도 문제다. 발상의 전환은 노조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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