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행의 재밌는 法테크

누군가에게 고용된 사람을 피용자, 고용한 사람을 사용자라 한다. 그런데 피용자가 일을 하다가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 사용자에게 책임이 없다면 피해자로서는 억울할 일. 어떤 경우에 사용자가 책임을 져야 할까.

▲ 대형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럴 경우 사용자 책임이 문제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가을 설비공사업체 A사의 대표인 초등학교 친구가 B보험회사로부터 소장을 받고 필자를 찾아왔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A사는 모 제약회사와 공장설비 공사계약을 맺고 조제탱크 제작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공장의 배관 파이프에서 가스가 누출되자 제약회사 직원이 A사의 현장 직원에게 용접작업을 부탁했다.

하지만 A사 직원은 공사계약상의 업무범위와는 무관한 것이어서 거절했다. 제약회사 직원은 A회사 직원에게 재차 부탁했다. A사 직원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A사의 대표에게 알리지 않은 채 용접작업을 했다. 제약회사 직원은 당시 현장에서 작업을 감독했다. 그런데 작업 중 용접 불똥이 튀면서 화재가 발생해 공장의 일부를 태우고 말았다.

이로 인해 B보험회사는 화재사고로 인한 보험금을 제약회사에 지급했고, A사를 상대로 구상금 3억원을 청구했다. 청구 이유는 이렇다. “A사가 화재사고에 대해 민법 제756조에 따른 사용자책임이 있다. 또한 제약회사와 A사의 공동불법행위에 의한 사고다. A사의 과실이 80%다.” 그렇다면 A사는 사용자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누군가를 고용해서 일을 해야 한다.

이때 고용한 사람을 사용자라고 하고, 고용된 사람을 피용자라 한다. 그런데 피용자가 사용자를 위해 일을 하다가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사용자에게 책임이 없다면 피해자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때문에 피용자를 통해 이익을 보고 있는 사용자에게 일정한 책임을 묻는 것이 형평에 맞다. 그래서 민법 제756조는 사용자책임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다만 사용자가 피용자의 선임 및 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을 때 또는 상당한 주의를 해도 손해가 발생했을 때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법원은 ‘사무집행’의 의미를 이렇게 판단했다.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업활동, 사무집행행위, 또는 그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이면 행위자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함 없이 사무집행에 관한 행위로 본다.”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이렇게 밝혔다.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관상 사무집행의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피용자의 행위가 사용자의 사무집행행위에 해당하지 않음을 피해자가 알았거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피해자가) 알지 못한 경우엔 사용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대법원 판례도 살펴보자. A씨가 B증권사의 차장 행세를 하면서 C씨에게 선물 등 투자를 권유하거나 투자금을 수령해 횡령하는 등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는 외관상 B증권사의 사무집행과 관련된 것”이라면서 B증권사의 B씨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인정했다.

친구의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A사의 사용자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선고됐다. A사의 작업범위에 용접작업이 포함돼 있지 않았고, 제약회사 직원의 지휘·감독을 받아 작업을 했으며, A사에 작업사실을 알리지 않아 A사로선 용접작업에 관한 어떤 지시나 감독을 할 수 없었다는 게 이유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