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81

▲ 명나라로부터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패문을 받아든 이순신은 분개함을 금치 못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순신은 승전고를 울리며 기고당당하게 한산도로 돌아왔다. 바로 이때가 이순신 수군의 전성시대였다. 하지만 이를 시기하는 세력이 있었으니, 육로 제장과 조정에 있는 일부 당인들이었다. 이순신은 이렇게 ‘역심을 품은 장수’라는 의혹을 받기 시작했다.

남해현령 기효근이 영등포 앞바다에서 나오는 적선 1척을 나포했다. 명나라 병사 2인과 일본 병사 8인이 실려 있었는데, 이들은 이상한 패문牌文(중국에서 조선에 칙사를 파견할 때, 파견목적, 일정 등을 기록해 사전에 보내던 통지문)을 갖고 있었다.

皇明宣諭都使譚宗仁禁討牌文
朝鮮國三道水軍統制使前
宗仁仍留熊川行長陣中 以待天朝許和之命 近日倭人恐㤼貴下舟師之威 多般哀乞故牌文成送 日本諸將 莫不傾心歸化 俱欲捲甲息兵 盡歸本國 爾各兵船 速回本處地方 毋得近駐日本營寨 以起釁端云云

황명선유도사 담종인이 토벌을 금하는 패문
조선국 삼도수군통제사 앞
담종인은 웅천 소서행장의 진에 머무르면서 중국 조정이 화의를 허락하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 왜인들이 귀하측의 위세에 겁을 먹고 두려워하여 이렇게 패문을 써 보낸다. 일본 제장은 귀국하기로 마음이 기울지 않은 자가 없다. 모두들 무기를 거두고 병사들을 쉬게 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니 각 병선은 속히 본영으로 돌아갈 것이며 일본 진영 근처에 주둔하여 싸움의 단서를 일으키지 마라.

이 패문을 본 순신은 분개함을 금치 못하였다. 원균, 이억기 등 제장도 화를 참지 못했다. 그렇다고 답문을 지어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가 그러하였다. 그때 원균이 자청해 글을 잘 쓴다고 소문난 손자 원의갑元義甲에게 답문을 만들게 했고, 순신도 허락했다.

원래 이순신은 글이나 글씨를 남에게 대신 시킨 일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심기가 심히 불편하기도 하고 명나라가 조선의 처지를 깔보는 것이 분하여 집필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원의갑의 글은 합당치 못하였다. 할 수 없이 이순신이 붓을 잡고 회답문을 지어 정사준을 시켜 보냈다.

朝鮮國三道水軍統制使謹答呈于 皇明宣諭都司譚宗仁大人前
敵人 自開釁端 連兵渡海 殺我生靈 一國臣民 誓不共戴 各道舟師 東西策應 使殘兇餘孽 隻櫓不返 不意大人宣諭牌文到陣 奉讀再三 諄諄懇懇 極矣盡矣 但敵人屯據 是皆我土而 謂我近日本之營寨云者 何也 謂我速回本處地方云者 亦未知在何所耶 惹起釁端者 非我也敵也 今敵人退據沿海 尙不斂惡 豕突諸處 刦掠人物 捲甲渡海之意 果安在哉 伏惟大人遍曉此意 俾知順逆之道 幸甚幸甚

왜적이 싸움의 단초를 스스로 열어 군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 우리 백성들을 죽이니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왜적과 같은 하늘 아래서 살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조선 각도의 군사는 남아 있는 흉악한 왜적이 노 1개조차 가지고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자 합니다. 뜻밖에도 대인이 타이르는 패문을 진중에 도착해 재삼 읽어보니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극진합니다. 다만 적들이 머무르는 곳이 모두 우리 땅이거늘 우리에게 일본 진영에 가까이 가지 말라 함은 어찌된 것이며 또한 우리에게 빨리 본영으로 돌아가라 함도 뜻을 모르겠습니다. 싸움의 단초를 일으킨 자는 우리가 아니라 왜적들입니다. 지금도 왜적들이 연해에 거하면서 험악한 짓을 계속하고 있고, 여러 곳에 쳐들어가 사람과 물건을 겁탈하고 노략하고 있으니 무기를 거두어 바다를 건너가겠다는 뜻이 과연 진심이겠습니까.

이렇게 답문을 보낸 이순신은 당항포에서 전승한 제장들의 공을 고찰하여 보았다.

▲ 이순신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조방장 절충장군 어영담은 적의 대선 2척을 분멸하고
여도권관 김인영은 대선 1척 중선 1척을 분멸하고
녹도만호 송여종은 대선 1척 소선 1척을 분멸하고
귀선돌격장 이언량은 중선 2척을 분멸하고
사도첨사 김완은 중선 1척을 분멸하고
전 부산첨사 배경남과 판관 이설은 함께 대선 1척을 분멸하고
보주통장步駐統將 최도전과 일령장 노천기와 이령장 조장우는 삼장이 함께 소선 1척을 분멸하여 버렸다.
이상은 전라좌도제장

전라우수영 우후 이정충은 대선 1척을 분멸하고
어란만호 정담수는 대선 1척을 분멸하고
해남현감 위대기는 중선 1척을 분멸하고
남도포만호 강응표는 중선 1척을 분멸하고
금갑도만호 이정표는 중선 1척을 분멸하고
목포만호 전희광은 소선 1척을 분멸하고
강진현감 유해와 주부 김남준은 함께 중선 1척을 분멸하고
일령장 윤붕과 충순위忠順衛 배윤과 보주통장 곽호신은 삼장이 함께 적의 소선 1척을 분멸하여 버렸다.
이상은 전라우도제장

소비포권관 이영남은 대선 2척을 분멸하고
경상우수사 원균은 중선 2척을 분멸하고
사천현감 기직남은 대선 1척을 분멸하고
고성현령 조응도는 대선 1척을 분멸하고
웅천현감 이운룡은 대선 1척을 분멸하고
하동현감 성천유와 당포만호 하종해는 양장이 함께 중선 1척을 분멸하고
거제현령 안위安衛는 중선 1척을 분멸하고
사량만호 이여념은 중선 1척을 분멸하고
진해현감 정항鄭沆은 중선 1척을 분멸하여버렸다.
이상은 경상우도제장

이순신은 제장들 공을 고찰한 뒤 승전고를 울리며 기고당당하게 한산도로 돌아왔다. 바로 이때가 이순신 수군의 전성시대였다. 하지만 이를 시기하는 세력이 있었으니, 육로 제장과 조정에 있는 일부 당인들이었다. 이들은 말을 지어 이렇게 선전했다. “이순신이 삼도의 6만 정예와 1000척 병선, 100만명의 유민을 안고 삼도 연해의 해왕海王 노릇을 한다.” 이는 원균과 이일의 무리가 지어낸 말인데, 권율, 김응서의 무리까지도 그 유언비어에 현혹되고 말았다. 탄식할 일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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