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교수의 探스러운 소비

▲ 소비자가 ‘내 몸에 좋은 유기농’만을 원한다면 ‘환경을 생각하는 유기농’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오늘날 소비자는 ‘슈퍼갑’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그들의 니즈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힘을 가진 소비자는 이제 그 지위를 현명하게 활용해야 한다. 21세기 소비자의 행동 미션, 컨슈머십을 새롭게 정립하면 어떨까.

몇년 전 한국소비자원은 유기농 우유와 일반 우유의 영양성분이 큰 차이가 없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유기농 우유가 제 값을 하지 못한다며 비싼 값을 주고 사먹을 필요가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스마트 소비자’들이 가득한 이 시대에 이런 반응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소비자들은 왜 유기농 우유가 일반 우유보다 영양성분이 우수하다고 생각했을까.

유기농 우유는 생산 과정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을 준수하고 젖소를 더 건강한 환경에서 키워 얻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일반 우유보다 단백질이나 지방, 비타민과 같은 영양성분을 더 강화하려고 만든 게 아니다. 유기농 식품은 생산 과정에서 환경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최종 생산물에 포함될 위해한 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기농 제품을 많이 써야 하는 이유는 소비자의 선택이 자신의 신체뿐만 아니라 환경과 사회를 살리는 데 기여해서다.

오늘날 소비자는 많은 시장에서 ‘슈퍼갑’이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률과 제도가 정비됐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얻고 집단으로 쉽게 결집할 수 있다는 점도 파워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소비자의 선택은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의 종류와 생산방식을 바꾼다. 소비자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돈을 쓰면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제품을 만들어 낼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오로지 ‘내 몸에 좋은 유기농’이면 ‘환경을 생각하는 유기농’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기업은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소비자 니즈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생필품을 확보하기 어렵고 소비자로서의 기본 권리도 보호받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을 논하기 어려웠다. 소비자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찾아주는 게 시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이 성숙하면 기업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도 강조해야 한다. 소비자는 소비의 사회적 파급 효과와 환경적 영향도 고려하는 성숙한 컨슈머십(consumership)을 보여줘야 한다. 내 몸에 좋은 소비 외에도 환경보호나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돈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제품이 다소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 생산 과정에 참여한 생산자의 정성이나 철학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그 대가로 정서적 만족감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는 ‘시장에서의 선택’을 통해 그 어떤 집단보다도 사회를 빨리, 바르게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지위를 활용하고 있다. 이제는 스마트한 소비자들을 위해 21세기 소비자의 바람직한 행동 미션, ‘컨슈머십’을 새롭게 정립하면 어떨까.

사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권장재의 목록을 만들고 그 상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자. 상거래에서 거래 당사자로서 지켜야 할 신의성실의 의무를 지키자.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무리한 요구를 해 다른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감정 노동자 같은 거래상의 약자들을 또 다른 고객으로 존중하자. 그들은 소비자를 위해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비자의 고객’이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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