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막무가내식 정비 논란

▲ 정부의 유사ㆍ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 지침이 사회적 약자 보호를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역할을 분담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던 사회보장사업을 대폭 줄이기로 결정, 논란이 일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사회보장위원회는 8월 11일 ‘지방자치단체 사회보장사업 정비 추진계획’을 통과시켰다. 정부와 지자체간 유사ㆍ중복되는 사회보장사업을 정비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틀 후인 13일 사회보장위원회는 각 지자체에 정비 지침을 하달했고, 9월 25일까지 정비계획을 만들어 내라고 통보했다. 이에 지자체들은 총 1296개 사업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사회보장위원회 관계자는 “지자체 사회보장사업 중 유사ㆍ중복 사업을 정비해 다른 사회보장사업을 펼치면 좀 더 많은 사회적 약자가 혜택을 볼 것이라는 차원에서 지침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 시민단체 측은 “기존 사회보장사업을 더 강화하고, 새로운 지원책을 마련해도 모자랄 판에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겠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 측이 주장하는 문제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사회보장사업의 수혜자가 사회적 약자인 만큼 실질 효과 등을 모두 고려해 정비 사업을 결정해야 하지만 수혜자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현장 실사를 실시한 지자체가 단 한곳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이 대거 정비됐다는 게 시민단체 측의 주장이다. 1296개 유사ㆍ중복 사업 중 230개(약 17%)나 포함된 장애인 관련 사업이 대표 사례다.

일례로 지자체 대부분은 ‘장애인 활동지원(33곳)’을 정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중증장애인에게 지원하는 ‘월 128시간의 바우처(복지카드 형식)’와 중복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지원은 일평균 4시간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이 맞벌이를 한다고 가정하면 턱없이 모자란 지원이다. 지자체 14곳이 운영비를 삭감하겠다고 밝힌 ‘수화지원센터’도 마찬가지다. 센터 운영비가 줄어들면 청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수화통역서비스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가 줄어드는 셈이다.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은 “각 지자체가 유사ㆍ중복 사업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실제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관련 사업을 죄다 없애고 있다”며 “심지어 장애인 주거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지자체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 장애인은 거리로 나앉으라는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둘째 문제는 사회보장위원회가 유사·중복 사업을 정비하라는 지침을 지자체에 하달하면서 “자체 정비 계획을 보내지 않을 경우 지자체 평가에 반영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자체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회보장위원회 관계자는 “어떤 사업을 줄일지를 결정하는 것이나 이를 통해 남은 예산을 다른 사업에 투자하는 것도 지자체의 자율이며, 압력 같은 건 없다”고 반박했지만 실제론 압력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회보장위원회 측이 언급한 ‘지자체 평가’는 행정자치부의 ‘지자체 합동평가’와 보건복지부의 ‘지역복지 평가’다. 그중 행자부의 평가는 지자체가 무시하기 어렵다. 이 평가에 따라 지자체의 특별교부금 액수가 산정돼서다. 정부의 지침대로 사회보장사업을 줄이지 않으면 특별교부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8월에 내린 지침에 따라 정비 계획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시민단체조차 최근에야 알 만큼 지자체는 수혜자들과 그 어떤 조율도 하지 않았다”며 “게다가 9월 25일까지 정비 계획을 제출하라는 건 문제가 될 것 같은 정책을 추석 전에 조용히 처리하겠다는 건데, 이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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