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에 서민만 곡소리
서울 구로구의 시가 3억원짜리 주택을 1000만원만 주고 사들인 A씨는 부동산 중개업자와 짜고 2억9000만원에 전세 매물로 내놨다. 보증금 2억4000만원에 살고 있던 세입자는 어쩔 수 없이 짐을 쌌다. 보증금이 폭등했지만 넘쳐나는 수요 덕분인지 계약은 곧바로 성사됐다. A씨로선 1000만원만 투자해 3억원짜리 주택을 사들인 셈이다.
실투자금이 들어가지 않는 ‘무피(無+fee) 투자’가 부동산 시장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세 품귀 현상이 심해지자 나타난 신종 재테크 방식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런 방법으로 500만~2000만원밖에 들이지 않고 아파트를 샀다는 무용담(?)이 넘쳐나고 있다. 세입자들은 왜 무리한 전셋값이 인상을 받아들이면서까지 무피투자의 희생자가 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전세난이 위험수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전세가 품귀 탓에 세입자는 웃돈을 감수하면서까지 달려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전세난이 또 다른 ‘리스크’를 만들고 있다는 거다. 무엇보다 전셋값이 저렴한 지역을 찾아다니는 ‘전세 난민難民’이 늘어나고 있다. 세입자가 ‘강남3구→서울 외곽→수도권’ 으로 점차 밀려나는 것이다. 조은상 부동산써브 책임연구원은 “통계를 보면 이번엔 경기도 거주자들이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경기 전세난민이 밀려나면 또 다른지역에 난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른바 ‘전세깡패’도 골칫거리다. 이들은 전셋값과 매매가 차이가 적은 아파트를 선별해 사들인다. 집을 매입한 뒤엔 전세 품귀를 악용해 보증금을 대폭 올려 내놓는다. 적은 비용으로 아파트를 사들인 후 가격이 오르면 시세차익을 받고 되파는 것이다. 전세깡패 세력들이 올린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는 결국 이사하거나 무리한 전세 대출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전세 수급의 불균형 해소 대책으로 매매시장 활성화만을 내세우고 있다. 조은상 연구원은 “매매거래 활성화에 초점을 둔 대책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전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서민, 전세난의 덫에 빠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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