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서민주거안정책의 虛

양도세 면제, 후분양 대출보증, 주택 취득세율 인하,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대출 지원 요건 완화, 재건축 연한 규제 완화, 뉴스테이 도입…. 누구를 위한 혜택일까. 건설사, 임대인 등 공급자를 위한 정책들이다. 전셋값 이 떨어질까. 당연히 아니다. 이런 “서민 없는 정책”으로 전세값의 상승세가 꺾이는 게 더 이상하다.

▲ 전문가들은 정부의 주택정책이 개발과 공급, 매매 중심이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사진=뉴시스]
박근혜 정부는 올해 3번의 서민 주거안정대책을 내놨다. 1월에는 기업형 임대사업의 일환인 ‘뉴스테이’ 정책을 발표했고, 4월엔 임차보증금 반환보증을 지원하는 서민주거비 부담 완화 방안을 내놨다. 9월엔 저소득 1인 가구를 위한 맞춤형 주거지원이라며 집주인 리모델링(재건축) 임대사업 활성화를 발표했다. 여기엔 뉴스테이 활성화도 포함했다.

2013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내놓은 서민 주거안정 대책만 총 11건. 하지만 서민 주거환경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정책의 목표가 전월세 가격을 떨어뜨리는 건데 올라가기만 해서다. 묘한 현상도 나타난다. 이미경(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9월 11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서민 주거안정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전셋값이 상승했다.

이미경 의원은 “정부가 주택정책 발표만 하면 전세가가 급등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2013년 3월부터 2015년 8월까지 2년반 동안 서울의 전세가격은 약 16%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택매매를 활성화하면 전세 수요가 줄어들 거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주택매매 활성화가 오히려 전세난을 악화시킨다는 걸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전셋값 상승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통계를 보면 지난 7년간 계속돼 왔다. 이젠 불감증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KB국민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전세가격지수는 2008년 10~12월 석 달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다.

 
그나마 내려간 10월, 11월, 12월 석 달은 MB정부가 ‘전매제한 규제 완화(8월)’ ‘종합부동산세 인하(9월)’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 완화(9월)’ ‘투기과열지구 해제(11월)’ 등 주택 매매시장 활성화를 위해 처방전을 쏟아내던 시기다. 덕분에 세입자들이 매매로 일부 전환하자 전셋값이 떨어진 거다. 

주택정책 콘셉트 아예 잘못 잡아

하지만 그 이후 월별 전세가격지수는 내려간 적이 없다. MB정부 집권 기간에 가장 많은 전월세 안정화 대책이 발표된 2011년(총 6건)에는 2013년 3월을 100으로 볼 때 가장 높은 9.35포인트 상승세를 기록했다. 당시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책을 너무 많이 발표한 탓에 시장에 내성耐性이 생겨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주택이 더 많이 공급되지 않아 전세가격이 오른 것인데 정부의 실패로 몰아가선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을 따르면 주택공급량은 지금과 비슷한데 부동산 시장을 강하게 규제한 참여정부 집권 기간에 전셋값이 떨어진 걸 풀이하기 어렵다.

참여정부의 전세가격지수는 임기 초기인 2004년에 -2.59포인트, 2005년은 -1.46포인트 각각 떨어졌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잡겠다며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건설, 재건축 개발 이익 환수, 부동산 보유세율 강화, 비사업용 토지 양도소득세 중과 등 각종 규제책이 쏟아지던 집권 초기의 일이다. 공공택지 분양가 인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은 건설 업체와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 강화 및 총부채상환비율(DTI) 확대는 부동산 업자가 강력하게 비판했음에도 서민의 삶을 좌우하는 전셋값만큼은 확실히 잡는 데 성공했다는 거다.

 
반면 MB정부의 전세가격지수는 평균 5.09포인트 올랐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중인 올 상반기엔 평균 3.85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평균 물가상승률이 0.6%대라는 걸 감안하면 폭발적인 상승세다. 박근혜 정부의 주택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이 문제일까. 상당수 전문가는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처방전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은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전환해 전셋값을 낮춘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며 “그 발상에서 나온 게 집값 떠받치기였는데 집값에 연동해 전셋값이 결정되는 구조에서는 집값이 오르면 전셋값도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매매거래 활성화를 위한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전세대책으로 잘못 이해했다는 얘기다.

이태경 토지정의연대 사무처장은 “극단적인 수급불균형”을 원인으로 꼽으면서 “수많은 전세가 월세로 전환돼 물량은 줄고 집값 상승 기대심리가 없으니 매매 수요는 감소하는데 정부가 집값을 떠받치니 괴리가 일어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학렬 한국갤럽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은 정부정책 실패라기보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전국으로 보면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서울로 몰려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의 주택보급량은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정부는 매매물량이든 임대물량이든 최대한 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미분양이 나더라도 물량을 계속 풀어야 집값이 떨어지고 전셋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겠는가. ”

박근혜 정부가 ‘정책 대상’을 잘못 선택했다는 주장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 고소득층을 위한다는 비판과 궤를 함께한다. 조명래 단국대(도시지역계획학)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시장에는 ‘집을 살 준비가 돼 있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내 집을 가질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집을 살 수 있는 이들을 위한 정책만 나오니 전세난이 해결되겠는가. 정책의 대상을 서민에게 맞추지 않으면 전세대책은 계속 실패할 거다.” 정책이 경기활성화, 공급 확대, 매매수요 전환 등에 맞춰져 있고, 임차인을 위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11건의 대책을 내놨지만 세입자를 위한 건 고작 전세자금 대출 완화 정도”라며 “최근 발표한 뉴스테이 정책마저 공급자의 이익(사업성)을 전제로 한 것인데 성공할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심각한 전세난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눈은 이처럼 제각각이다. 그래도 공통분모가 분명히 있다. 서민의 주거안정을 꾀하지 못한다면 한국경제가 ‘침체터널’을 탈출하기 어려울 거라는 점이다.

주거비 해결 못하면 경기 침체

이는 간단하게 도식화해서 설명할 수 있다. ‘임대주택 가격이 계속 오르면 주거비 부담이 커진다→주거비 부담이 커지면 소비가 줄어든다→내수가 침체되고 경기는 활력을 잃는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주택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불통不通’이 또 서민만 잡게 생겼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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