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의 이유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방위산업 비리를 넘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비리를 뿌리 뽑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비리 문제를 ‘범죄’라고 단언하며 사회 각 부문에 켜켜이 쌓여 있는 고질화된 부정부패의 단호한 조치를 강력히 시사했다. 이런 의지는 일선에 전달됐다. 같은 달 황교안 법무장관(현 국무총리)은 “검찰의 모든 역량을 부정부패 처단에 집중해 달라”고 밝혔다. 이는 사정 정국의 시발점이 됐다.
9월 김현웅 현 법무장관은 올 하반기 공직비리 등 4대 부정부패 척결을 검찰에 지시했다. 김 장관이 뽑은 4대 부패범죄는 공직비리, 중소상공인을 괴롭히는 등 국가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비리,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국가재정 건전성을 저해하는 비리,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전문 직무 영역의 구조적 비리 등이다.
하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공기업, 공공기관 등 공조직의 부정부패와 방만경영은 여전했다. 문제는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 12년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직유관단체 등 1116개 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부패행위자 처벌 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부패행위자 161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경징계 이하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특히 증수회, 향응수수 등 징계 대상의 15.5%가 주의·경고 처분에 그쳤다. 부패 금액이 300만원을 넘는 부패 사건의 징계 대상 가운데 19.4%도 경징계 이하의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한국 LH공사는 지난 8월 성추문으로 해임 결정을 받은 임직원의 처벌을 정직 5개월로 경감시켰다. 김상희(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LH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LH공사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에서 해임 의결된 사건의 징계를 중앙인사위 임원의 휴가를 핑계로 3주나 미뤘다. 그 기간에 성희롱 피해자는 합의금 4000만원을 받고 형사소송을 취하했고, 해임 의결은 정직 3개월로 뒤집어졌다.
이 사실을 눈치 챈 공사 직원들이 탄원서를 제출해 재심의가 이뤄졌지만 처벌은 정직 5개월로 마무리됐다. 문제는 정직 5개월은 규정에 없는 처벌이라는 사실이다. LH공사의 규정에 따르면 정직은 1~3개월 이내로 해야 한다. 그 이상의 죄가 있다면 해임 또는 파면해야 한다. 간부 직원의 해임을 막기 위해 대놓고 편법을 저지른 셈이다.
공조직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련 법과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아서일까. 그렇지 않다. 공무원 징계령, 국가공무원법,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 등에는 부정부패 행위자의 처벌 규정이 있다. 김주찬 광운대(행정학) 교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부정부패를 처벌하는 법이 약한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서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정부패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상호견제 시스템, 외부기관 감사 등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기관에 설치된 인사위원회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도 제도로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011~2012년 공직유관단체로 신규 지정된 145개 기관 가운데 63곳(43.4%)의 인사위원회는 내부위원만으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외부위원을 기관장이 추천하도록 돼 있어 독립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김 교수는 “인사위원회 구성에 외부인을 일정 비율 이상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위원회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없애려면 해당 기관 출신 인사가 외부인사로 활동하고 있는지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 9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이 법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과 관계 없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김영란법’이 공조직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제 식구를 감싸는 철밥통이 워낙 단단하기 때문이다.
강서구ㆍ박소현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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