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정신병동 이야기」

 
이제 어지간한 번화가나 주택가에서도 신경정신과 간판이 눈에 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신병자와 정신병원을 비현실적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정신과 치료 기록은 평생 낙인처럼 쫓아다니며, 구직 활동에 치명적 감점 요인이다’는 해묵은 도시 괴담은 정신병의 편견과 반감을 잘 보여 준다.

현실은 어떨까. 신경정신과를 몇 년 동안 꾸준히 드나드는 나의 친구들이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사회인으로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신병원 치료 기록이 직장 생활에 악영향을 끼칠 일은 없을 듯하다. 내가 알기로는 정신병력보다 신장질환 병력이 구직과 직장 생활에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 급성정신과 병동에서 몇 년 동안 간호조무사로 근무한 작가 대릴 커닝엄이 개인 블로그에 연재한 만화 「정신병동 이야기」는 정신병의 올바른 상식을 전한다.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질환인 치매로부터 시작해 우울증, 망상, 자해, 반사회성 인격 장애, 양극성 장애, 자살 충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과 더불어 올바른 대응책을 제시한다. 「정신병동 이야기」는 유쾌하고 명랑한 만화는 아니다. 교육 정보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지만 학습 만화와도 거리가 있다.

작가는 만화보다 일러스트에 가까운 간결한 그림과 절제된 문장으로 정신질환자의 모습을 그려 낸다. 생생하고 자극을 주는 정신병원의 내용이 시종일관 단순하고 건조하게 그려지니 참 으스스하다. 그렇다고 이 만화가 으스스하기만 한 것만은 아니다. 자살 시도가 원천 봉쇄된 정신병원에서 기어이 자살에 성공한 사람들을 목격한 이야기에선 슬픔이 앞선다.

자해 환자는 ‘남의 관심을 끌려고 자해한다’는 대중의 편견과 달리 절망과 우울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해한다는 내용 또한 그렇다. 몸이 다치면 뇌에서 베타 엔도르핀이 나와서 진통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란다. 책의 끝 부분에서 작가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심하게 앓아 온 자기혐오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자살 직전에 마음을 돌린 우울증 생존자임을 고백한다.

작가를 깊은 우울의 늪에서 건져 낸 것은 다름 아닌 블로그를 기반으로 한 만화 창작 활동이었다고 한다. 「정신병동 이야기」는 얼핏 서늘하고 우울해 보이지만 정신질환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해 주는 풍요로운 만화다. 에피소드마다 첨부된 정신의학과 교수의 알기 쉬운 해설문은 도움을 준다. 지식과 이해는 공포·혐오 대신 연민·재활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수능 성적을 비관해 목숨을 끊은 뉴스의 기사에 ‘죽을 용기로 살 것이지’라는 댓글을 달기 전에 부디 이 만화를 읽어 보면 좋겠다.
이진 소설가 elbbubjin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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