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甲이 숨기고 싶은 이야기

 ‘방만경영, 공금횡령, 불공정 계약, 비정규직 갑질, 일감 몰아주기, 성추행….’ 올해 국감에서 드러난 주요 공기업, 공공기관들의 갑질이다. 공조직의 기강 해이와 모럴 해저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 준다. 문제는 이런 갑질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직을 워낙 잘 감싸기 때문이다. 슈퍼甲 공공기관이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 봤다.

 
매년 국정감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방만경영, 부정부패 사건이다. 하지만 ‘신神의 직장’이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듯 바뀌는 건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공조직은 총 316개다. 공기업 30개, 준정부기관 86개, 기타공공기관 200개다. 2013년 295개에 비해 21개가 늘어난 수치다. 공공기관은 값싸고 질 좋은 재화와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혈세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조직체다.

하지만 늘어난 공공기관의 숫자만큼 제공하는 서비스가 개선됐는지는 의문이다. 되레 기관이 늘어난 만큼 방만경영과 부정부패 역시 증가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감에서도 이들의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해가 바뀌고 기관의 명칭이 바뀌었을 뿐 그들은 여전히 갑甲질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 공공기관의 부정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민영화와 같은 강력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 방만경영 어디까지 = 공기업ㆍ공공기관의 비리는 대부분 방만경영과 연관돼 있다. 경영평가 하위 등급을 받은 공공기관의 과도한 업무추진비, 접대비, 임직원 평균 연봉 등은 계속해서 지적되는 사항이다. 지난해 공공기관 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한국관광공사가 임직원들에게 초저금리로 대출해 준 것을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다. 이 공사는 지난해 6월부터 현재까지 공사 사옥 이전에 따른 주거안정 명분으로 상근이사를 포함한 임직원 133명에게 119억원을 빌려줬다. 문제는 대출의 금리가 1.1%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는 시중은행의 가계 신용대출금리인 2.77~3.18%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1년 정기예금 이자율 평균인 1.6%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2013년에는 경영평가 하위 등급을 받은 한국장애인공단, 한국석유공사 등 6곳의 공공기관이 직원들에게 7억3000만원을 무이자로 대출해 줬다”며 “정부가 2013년 말부터 방만경영과 부채 문제를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사장 명의로 4250만원(연회비 373만원)의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 스포츠클럽 회원권, 전무와 상무는 511만원씩의 스포츠시설 회원권을 각각 소유하는 등 지난 10년간 임원 피트니스 비용으로 2억2000만원을 사용했다는 것이 이번 국감에서 드러났다. 또한 지난해 7월 기획재정부의 방만경영 중점관리 기관에서 해제된 직후에는 선물잔치까지 벌였다. 예탁결제원은 지난해 10월에 열린 추계체육대회 행사에서 직원 모두에게 운동복과 운동화를 지급하는데 1억6800만원을 지출했고, 12월 창립 40주년 행사와 올해 5월 행사에도 압력밥솥ㆍ공기청정기ㆍ스마트빔 등 각종 기념품을 지급했다.

혈세 펑펑 쓰는 공공기관 방만경영

유의동(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7월 방만경영 중점관리기관에서 해제된 것에 너무 취한 것 아니냐”며 “방만경영 해제 기관으로 선정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들에게 선물을 쏟아낸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유재훈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을 질타했다. 한국석유공사 등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 공기업의 방만경영도 심각한 수준이다. 산자부 산하 공기업의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79조9600억원이다. 전년 동기 172조1000억원에 비해 4.6%(7조9600억원) 늘어났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 316곳의 부채가 전년 대비 0.1% 줄어든 것과 대조된다. 더욱이 산자부 공기업의 결손금은 국가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 결국 혈세가 낭비될 공산이 크다.
자원개발 명분으로 국내외에서 사업을 추진한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정부 산하 공기업 최초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 자산 가치를 부풀려서 해외자원개발에 나섰다가 4조원, 국내에선 844억원의 손실을 끼쳤다. 정부에 1조원 규모의 증자를 요청했지만 국회로부터 합병ㆍ해산을 요구받는 처지에 몰렸다. 이 공사의 부채는 2010년 1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4조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해외자원개발에 투자한 3조9000억원 가운데 2000억원만 회수하는 데 성공했을 뿐 계속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공사의 사정이 이 지경이 됐음에도 소속 직원들은 뒷주머니 챙기기에 바빴다. 한국광물자원공사가 볼리비아 국영광업공사(코미볼)와 함께 추진한 ‘코로코로’ 동광산 사업 과정에서 이 업무 담당자들은 항공권 인보이스 조작, 부적절한 골프 유흥 등으로 공금을 횡령했다. 이런 방식으로 2013년 1월 1일부터 올해 5월 30일까지 챙긴 금액은 25억원에 이른다.

▲ 국정감사를 통해 공공기관의 방만경영과 부정부패 문제점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사진=뉴시스]
◇ 그들만의 축제판 = 2013년 160조원이 넘는 부채를 보유한 에너지 공기업이 퇴직자들에게 순금열쇠ㆍ상품권ㆍ여행비 등 1인당 최대 300만원의 기념품을 지급, 국감에서 질타를 받았다. 당시 국감에서는 부채더미에 오르고도 자구 노력을 하기는커녕 기념품 잔치를 벌이는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2013년은 한국수력원자력이 검증조차 받지 않은 ‘짝퉁 부품’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공분을 사는 등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금파티’는 계속됐다. 한국해운조합은 지난해 허술한 선박 안전 점검과 엉터리 허위 보고서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비판을 받았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겠다던 해운조합에선 개선의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올해 국감에서 그동안 퇴직 비상근 임원ㆍ대의원들(회장은 금 100돈, 부회장 50돈, 임원30돈)에게 순금 열쇠를 선물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5년간 활동비로 8억여원을 지급했다.

특히 지난해엔 ‘비상근 임원ㆍ대의원 활동비 운영에 관한 기준’을 어기고 회장에게 초과 지급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황주홍(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회장의 1년간 활동비를 5000만원 이내에서 지급한다는 기준도 과도한데 이마저 어겼다”며 “해운조합이 임원의 편의를 봐주는 곳이 아니라 조합원을 위하여 봉사해야 하는 조직인 만큼 지급 기준의 규모도 줄이고 기준을 어겨 지급하는 편법도 중단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 현장에선 왕노릇 = 공기업ㆍ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 현장에선 갑질이 판을 쳤다. 보통 발주기관 사정 때문에 공사 착공이 늦어지거나 공사가 중단되면 국가계약법에 따라 추가 비용을 정산하는 등 계약금액을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공기업ㆍ공공기관은 ‘관행’을 빌미로 추가 공사비용을 지급하지 않았다. 공사기간 연장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건설사에 떠넘긴 것이다. 이런 관행은 부실공사의 단초가 됐다. 건설사가 추가비용을 털어 내기 위해 공사기간을 단축하거나 자재를 값싼 것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철도시설공단 등 공공기관이 하도급 업체인 건설사의 공사비용을 떼먹었다가 소송이 진행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 구간 1~4공구 공사를 맡은 국내 12개 건설사는 지난해 11월 발주처인 서울시를 상대로 한 공사기간 연장 추가 비용 배상 항소심에서 전원 승소 판결을 받아 냈다. 서울시는 건설사 측에 141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밖에도 동해남부선 복선전철 구간, 오리~수원 복선전철 6공구, 전라선 전차로, 굴포천 방수로 등 많은 현장에서 건설사들이 발주처인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상대로 소송전에 돌입했다.

반복되는 공공기관 방만경영

비정규직을 괴롭히는 갑질도 잇따랐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석유관리원은 청소ㆍ시설관리 용역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간접고용 및 파견노동자을 옥죄는 ‘독소 조항’을 곳곳에 심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한국지역난방공사의 과업 지시서에는 ‘직원이 불결하거나 미비하다고 판단해 재청소를 지시할 때는 시간ㆍ횟수에 관계없이 재청소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 한국농어촌공사는 직원의 인맥을 통해 504명을 특채했다.[사진=뉴시스]
한국전력기술의 과업 지시서에는 ‘을(용역업체 포함 용역근로자)의 모든 종업원은 갑(전력기술직원)의 직원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갑의 직원 등으로부터 3회 이상 불친절로 적발되면, 을(용역업체)은 종업원(용역근로자)을 교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전KPS와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청소원의 자격과 관련해 ‘관계 기관 신원조회 결과 사상이 온전한 자’로 규정했다. 비정규직 직원의 임금도 후려쳤다. 한국철도공사는 현행법에 따라 시중 노임 단가인 1일 6만3326원을 지불해야 했지만 이보다 훨씬 적은 4만1680원을 적용했다. 공공기관에서 우리 사회의 최약자 그룹인 용역노동자에게 갑질을 하고 있은 셈이었다.

◇ 공공기관 음서제 등장 = 일부 공기업ㆍ공공기관의 ‘뒷문 채용’은 관행에 가까웠다. 부산항만공사는 각종 청탁을 받은 인사팀장이 7급 계약직 3명을 특별 채용한 것도 모자라 이들을 1년 뒤 정규직 등으로 전환시켰다. 기관장의 구두 승낙을 받았다며 특채 공고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뽑을 사람을 미리 정해 놓고 채용공고를 낸 결과 65명의 지원자가 모두 불합격됐다.

농어촌공사는 직원끼리 인맥을 통해 입사 신청을 받은 뒤 면접만으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04명을 특채했다. 임직원 자녀에게 취업 특혜를 주는 ‘고용세습’도 있었다. 한국건강관리협회는 지난 5년간 전ㆍ현직 임직원의 자녀와 친인척 50명을 채용했다. 공기업ㆍ공공기관 임직원 자녀에겐 바늘구멍만큼 좁다는 취업문이 ‘자동문’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낙하산 인사 논란도 거세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 공기업 퇴직자 184명은 최근 5년간 해당 공기업 출자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퇴직자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도 여전했다. 한국석유공사 동해비축기지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퇴직자 3명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수의계약을 통해 150억원 규모의 일감을 몰아줬다. 동해비축기지는 한국석유공사의 9개 비축기지 가운데 유일하게 위탁 운영하는 기지다.한전KPS의 일감 몰아주기도 도마에 올랐다. 자사 출신 퇴직 직원이 차린 기업에 5년간 수백억원의 일감을 수의계약을 통해 몰아줬다.

주승용(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한전KPS가 최근 5년간 퇴직직원이 설립한 회사 3곳에 몰아준 일감은 402건, 금액으로는 874억6000만원에 달했다. 특히 402건의 계약 가운데 137건(약 263억1000만원)을 수의계약으로 체결해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계약이 제한경쟁을 통해 이뤄졌고, 일반경쟁 방식으로 이뤄진 계약은 4건에 불과했다. 주승용 의원은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등 손쉬운 계약 방식을 통해 퇴직 직원이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는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며 “한전KPS의 일감 몰아주기로 민간사업자는 경쟁 입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력이나 노하우, 비용 절감 등의 기회를 박탈당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 하다 하다 못해 성추문까지 = 성추문도 빠지지 않았다. 한국석유공사의 안전운영팀장 A씨는 2013년 8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같은 팀에 근무하는 미성년자 여직원을 상습 성추행하고 폭행했다. A씨는 여직원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거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신체를 만지는 등 상습으로 성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적발 이후 A씨는 파면됐지만 석유공사는 1억원에 이르는 퇴직금을 지급해야 했다.

구직자 울리는 뒷문 채용

김삼수 경실련 정치사법팀장은 “봇물 터지듯 쏟아 내는 청렴 선언을 무시하고 ‘제 식구 감싸기’식으로 가볍게 처벌하다 보니 갑질이 근절되기는커녕 되풀이된다”며 “범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은 물론 공기업ㆍ공공기관 직원들의 의식을 전환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원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부정부패 사례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작업이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공기관의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부정부패 관官피아의 온상이 되고 있는 공기업의 경우 필요 유무를 분석해 민영화하거나 청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기관, 언제까지 문제아 취급을 받을 것인가. 이젠 그 단단한 철밥통 속에 ‘청렴과 혁신의 DNA’를 넣어야 하지 않겠는가. 공기업ㆍ공공기관의 철밥통, 이젠 깨질 때도 됐다.
강서구ㆍ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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