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친구 ❶

지난 2001년 3월 개봉한 곽경택 감독 영화 ‘친구’의 동원 관객은 무려 820만명(영화진흥위원회 당해 연도 최종 집계 기준)이다. 요즘에는 1000만명 관람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대형 배급사가 스크린을 독점하기 이전인 당시 기준으론 실로 엄청난 숫자다.

▲ 영화 ‘친구’는 극장 관객 수만 820만명을 넘기는 흥행기록을 세웠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마저도 그해 극장에 가서 맞돈을 내고 관람한 숫자만 따졌을 때 얘기다. 대한민국 인구를 5000만명이라 가정하면 대략 7~8명 가운데 1명 꼴, 코흘리개를 제외하면 4~5명 가운데 1명 꼴로 극장에서 ‘친구’를 본 셈이다. 나중에 비디오나 TV를 통해 본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 성인의 절반 이상은 이 영화를 관람한 것으로 보인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말을 믿는다면 이 정도의 흥행 대박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 ‘친구’는 작품성이나 오락성만으로 이 정도의 흥행을 설명하기 어렵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길들여진 관객의 관점으로 본다면 영화 ‘친구’는 그다지 돈 들인 흔적도, 영상 미학도 거의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준석(유오성 분)을 제외하면 성의가 부족하거나 때론 어설프고 민망한 수준이다.

모범생과 깡패 학생의 기묘한 우정, 깡패 친구끼리의 어긋난 운명과 배신·살해, 깡패 친구를 살해한 주인공 깡패의 사형 등 기본 골격은 TV 드라마 ‘모래시계’를 답습한다. 클라이맥스인 비 내리는 음울한 잿빛 도심에서의 비장한 살인 장면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떠올리게 한다.

엑스트라의 연기는 참담하다 못해 코믹하다. 신나는 음악 ‘Bad Case of Loving You’을 배경으로 네 친구(준석, 동수, 상택, 중호)가 시장을 가로질러 영화관까지 질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이다. 그 주변을 줄지어 걸어가는 여학생들의 엑스트라 연기는 압권이다. 몽유병 환자들의 집단 도보행진처럼 허공에 시선을 박고서 무표정하게 걸어간다. 배경음악만 으스스하도록 깔아 주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820만명의 관객이 몰렸다.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무리의식이다. 1970년대 민주화를 소리 높여 외치던 국민들은 전두환의 등장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독재자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존 애덤스 위컴이 한국인의 기질을 뭔가 하나 떴다 싶으면 아무 생각 없이 우르르 몰려가는 ‘레밍(leming·우두머리를 따라 집단으로 무조건 이동하는 북유럽 툰드라 지방의 설치류)’에 비유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레밍이 번역 과정에서 들쥐로 둔갑, 우리 국민이 분노했지만 레밍은 들쥐처럼 혐오스러운 몰골이 아니라 귀여운 해달처럼 생겼다. 들쥐라는 어감에 따른 반감만 접어 둔다면 한국 사회에 레밍류의 집단의식이 강하다는 점은 수긍할 만하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분위기와 바람에 휩쓸리는 무리의식이 유난히 강해서다. 이에 따라서 여론몰이도 유난히 쉬운 사회다. 언론이 우리 사회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회도 달리 없는 것 같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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