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누가 지시했나

▲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미래전략실로부터 합병 지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지 못했다.[사진=뉴시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물었다. “삼성물산 합병을 삼성 미래전략실이 지시했나?”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즉답을 피했다. 아니라면 강력히 부인했을 텐데 망설였다. 이는 예민한 사안이다. 그래서 최 사장은 입을 닫았을 것이다. 최 사장의 입을 막은 ‘보이지 않는 손’은 무엇일까.

김기식 의원(이하 김기식) :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대 0.35였지만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는 1대 2.19이 아닌가?”

최치훈 사장(이하 최치훈) : “그렇다.”

김기식 : “만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제일모직 대주주가 아니었다면 과연 그 시점에 이런 비율로 합병을 추진했겠나?”

최치훈 : “합병 시점은 세계적인 경영 상황을 기준으로 해서 추진했다.”

김기식 : “4월에 합병 계획이 있느냐고 했을 때 당시 삼성물산 IR 담당자는 ‘합병 계획이 없다’고 했다.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 합병을 추진해서 한 것 아닌가?”

최치훈 : “합병은 4월 말부터 준비했다.”

지난 9월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쟁점은 하나다. 삼성물산이 분명 손해 보는 합병을 했는데 그 배경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영향을 미쳤느냐다.

 
하지만 최 사장은 시종일관 즉답을 피했다. 이 질의-응답을 본 수많은 언론이 ‘(당시 삼성물산 경영진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 합병이 결정됐다’는 최 사장의 발언을 앞다퉈 보도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언론은 극히 드물었다.

실제로 최 사장의 발언을 다룬 언론 가운데 상당수는 ‘이재용 지배구조 체제가 본격화됐다’는 기사를 함께 다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황태자 이재용’을 위한 작업이라는 데 암묵으로 동의한 셈이다. 최 사장이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 합병을 추진해서 입장이 바뀐 것 아닌가”라는 김 의원의 질의에 “아니다”고 선을 긋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삼성그룹 측의 대응은 날카롭지 않았다. 김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삼성 미래전략실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걸 전제로 이렇게 질타했다. “삼성물산이 직접 (합병을) 하지 않고 미래전략실이 (합병을) 하는 지배구조가 우리나라 (재벌) 경영의 문제다.” 이 발언의 사실 관계가 틀렸다면 삼성 측은 법적 대응을 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삼성 측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최 사장이 삼성물산 합병 관련 질문에 모호하게 답변한 이유는 뻔하다”며 “미래전략실이 지시했다면 삼성그룹이 법률적 책임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미래전략실의 지시가 있었다면 삼성물산 합병이 예상대로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짐작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관건은 이 합병에 문제를 제기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응이다. 현재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합병 논란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투자자ㆍ국가 간 소송(ISD)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엘리엇 측은 ‘미래전략실 개입설이 사실이더라도 ISD를 진행하지 않겠는가’라는 더스쿠프(The SCOOP)의 질문에 “노코멘트”로 답했다. 합병은 성공했다. 하지만 ‘합병 시한폭탄’의 초침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변수는 ‘누가 보더라도 삼성물산의 손해인 이 합병을 결정하고 지시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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