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말하지 않는 식품관의 비밀
#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갤러리아 백화점의 식품관 ‘고메이494’는 지난 4월 신규 브랜드 6개를 추가로 선보이며 매장을 개편했다. 장진우 식당(양식), 미우야(우동), 까올리포차나(아시안) 등 맛집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다. 장진우 식당은 이태원 경리단길의 맛집으로 유명하다. 미우야는 정통 우동 전문점으로 인기가 많다. 특히 고메이494는 식당가와 식료품점의 공간을 구분하지 않은 ‘그로서란트(Groce rant·Grocery 마켓+Restaurant)’를 최초로 선보이고 호평을 받았다. 이곳에 외식을 즐기려는 가족 단위의 소비자가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몰려드는 이유다.
# 식품관을 강화하고 있는 건 신세계도 마찬가지다. 신세계는 7월 9일 SSG푸드마켓 목동점을 오픈했다. 서울 청담점, 부산 마린시티점에 이은 세 번째 프리미엄 식품 매장이다. 이 매장은 오픈 일주일 동안 일 매출 1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기존의 푸드마켓보다 유기농, 로컬푸드, PL상품의 비중을 55% 가까이 늘린 게 효과를 냈다. 신세계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직매입 비중을 기존 대비 2.5배 늘렸다. 전체 상품의 65%가 직거래 형태로 판매된다. 좋은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기로 했다.
‘유통의 꽃’ 백화점이 팔색조 변신을 꾀하고 있다. 유통 불황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 중심에 ‘식품관 개조’가 있다. 8월 21일 개장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식품관 단장의 결정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규모가 축구장 2배(1만3860㎡·약 4200평) 만하다. 이탈리아 식자재 브랜드 ‘이탈리(EATALY)’, 유명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유명해진 컵케이크 전문점 ‘매그놀리아’, 뉴욕 브런치 카페 ‘사라베스 키친’, 백화점 디저트 시장에서 넘버원 브랜드 ‘살롱 드 몽슈슈’, 프랑스 마카롱 전문 브랜드 ‘피에르 에르메’ 등 글로벌 외식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다.
현대백화점 판교점만이 아니다. 다른 백화점 식품관의 성과도 뛰어나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원하는 소비자가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어서다. 롯데백화점(10.2%·이하 2014년 기준), 현대백화점(14.2%) 등 서울시내 주요 백화점 식품관의 매출 신장률은 두 자릿수를 훌쩍 넘어섰다. 내수 침체 탓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백화점 전체 매출과는 정반대 흐름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백화점 식품관의 부작용도 노출되고 있다. 지역 상권과 영세상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현대백화점 판교점 주변엔 ‘… 식품관 6000평으로 판교상인 다 죽이는…’이라는 원색의 내용이 담긴 검은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이 지역 상인들은 백화점 개장 이후 매출이 평일엔 30~50%, 주말엔 70%까지 줄어들었다고 한탄한다.
지난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에 대형 쇼핑몰이 문을 열면 꼼장어 전문점, 꼬치구이, 주스 전문점, 떡집 등 주변 지역 음식점들의 매출이 79.1%(출점 전 대비)나 줄어들었다.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외식 브랜드가 지역 상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통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많은 미디어가 ‘백화점의 몰락’을 보도했다. 자연스럽게 ‘식품관의 리뉴얼’은 백화점이 선택한 ‘마지막 수’인 양 미화됐다.
하지만 백화점 식품관의 이면에서 싹트는 부작용을 지적하거나 분석한 미디어는 많지 않다. 그들은 호화로운 백화점 식품관만 봤고, 주변 상권은 보지 않았다. 그 사이 백화점 식품관엔 돈이 흐르고, 주변 상권엔 눈물이 흐르게 됐다. 백화점 식품관의 슬픈 자화상自畵像이다.
김은경 더스쿠프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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