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ESG 지표 효과 있을까

▲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후 수천억원의 손실을 봤다.[사진=뉴시스]
국민연금은 최근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평가지표를 투자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사회책임투자 요소를 고려하는 선진국 연기금의 운용전략을 벤치마킹한 결과다. 하지만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평가지표를 국민연금이 자체 결정하기 때문이다. 투자를 위한 지표를 맘대로 정하고, 맘껏 투자하겠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의 올해 주식투자 예상 수익률은 -0.2%(9월 초 기준)다. 지난해(-5.5%)에 이은 저조한 수익률이다. 지난 8월엔 5조여원의 손실을 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실적이 나빠서 손실을 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8월 국민연금에 1000억원 이상의 평가손실을 안긴 기업 대부분(SK하이닉스, 아모레퍼시픽, 제일모직, 삼성물산, SK, LG화학, 오리온, LG생활건강, 현대산업개발)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 영업이익이 줄어든 기업은 삼성전자, KCC, 포스코뿐이다. 기업의 주가가 실적이 아닌 다른 이유로 하락한 셈이다.

실제로 삼성물산ㆍ제일모직(합병 이슈), SK(경영진의 투자 확대 결정), 아모레퍼시픽(액면분할), 오리온(인수합병 이슈)의 주가는 업황이 아닌 경영전략의 영향을 받았다. 투자 전문가들이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이를테면 ESG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의 ‘통계와 수치’에만 집착해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사회책임투자 컨설팅업체인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ESG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은 상장사 40곳의 6년간(2007년 7월~2013년 5월) 수익률은 코스피 평균 수익률보다 41.3% 높았다. ESG 평가 결과 최하위 등급 30개사의 6년간 수익률은 코스피 평균 수익률보다 40.7% 낮았다. 선진국 연기금이 ESG 평가지표를 토대로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도 ESG 평가지표를 활용한 가상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이목희(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와 기금운용투명성 강화(ESG 평가지표 활용 포함)’를 골자로 발의한 국민연금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부터다.

기업지배구조나 갑을관계 외면

 
하지만 국민연금이 ESG 평가지표로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먼저 대부분의 선진국 연기금은 정해진 법률에 따라 ESG 평가지표를 활용하고 있다. 반면에 국민연금의 ESG 평가지표 활용은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개정된 국민연금법에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를 위해 투자 대상과 관련한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ESG 평가지표 활용은 국민연금의 재량이라는 얘기다. 당연히 ESG 평가지표도 국민연금의 자체 판단으로 결정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인권, 공정운영, 소비자 이슈, 사회발전 4개 분야를 ESG 평가지표로 반영했다. 하지만 불합리한 기업지배구조에 따른 주주권 적극 행사나 노조의 경영 참여, 기업 간 갑을관계 등 실질적인 ESG 평가지표 항목은 제외됐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도 ESG 평가지표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법률적으로 ESG 평가지표 항목을 정하고, 국민연금이 이를 의무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