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작전세력의 섬뜩한 루머 경제학

▲ 작전세력 적발건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폭락한 전광판 숫자를 보며 고개 숙인 투자자.
유럽발 금융위기가 한국 금융시장을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유럽연합(EU)이나 미국 정부가 정책을 발표할 때 마다 주식과 환율이 요동친다. 그럼에도 증권가에선 여전히 ‘카더라 정보’가 판을 친다. 조그만 일에도 크게 흔들리는 금융시장의 약점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올해 6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후임 자리에 홍영만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은 확실시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홍 후보가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음해성 루머에 휘말리면서 후임 인선이 백지화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사항도 일단 루머가 돌면 걷잡을 수 없다. 이런 루머가 힘을 발휘하는 곳은 또 있다. 증권가다.

# 6월 15일 오후 11시38분. “중소 식품업체, 금주 내 유력 대기업에 인수될 전망”이라는 정보가 증권가에 나돌았다. 인수합병(M&A)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된 증권가 ‘카더라 정보’였다. 사실이라면 ‘대박’을 노릴 수 있는 호재였다. 개미들은 열광했고, 거래량은 폭주했다. 하지만 이는 작전세력이 꾸민 루머였다. 작전세력 A씨는 “(당시) 3개를 질렀다”며 “분명히 ‘떡상’일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3개는 3000만원(1개 1000만원)을 베팅했다는 뜻이고 떡상은 상한가를 의미한다.

폭락장 틈새 파고드는 작전

 
A씨의 예상대로 이 식품업체의 주가는 곧바로 상한가를 쳤다. 하지만 루머가 허위로 밝혀지면서 주가는 곧장 반토막이 됐다. 3000만원을 베팅한 A씨는 순식간에 수백만원을 벌고 일찌감치 떠났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정작 낭패를 본 사람들은 작전의 덫에 걸려 투자했다가 매도 시기를 놓친 개미들이었다. 한 투자자는 “소문 믿고 투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고 한탄했다.

유럽발 금융위기 ‘폭탄’을 맞은 한국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혼돈 상태다. 올해 7월 18일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한마디에 실시간으로 코스피가 요동쳤다. 불안정한 세계 금융위기에 증시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 그러나 증권가 ‘카더라 정보’는 활개를 치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이 정보가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기를 경험하고 있는 개미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박은커녕 쪽박 찰 위기에 놓인 개미들이 주가 폭등을 예상케 하는 ‘카더라 정보’를 외면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김인석 KTB네트워크 부장은 “국내 증권시장은 혼돈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과장된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각종 카더라 통신의 진위 여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덫의 미끼로 던져진 ‘카더라 정보’는 날이 갈수록 치밀해 지고 있다.
금융시장이 초토화된 상태에서도 여전히 새어 나오는 금융가 ‘카더라 정보’.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를 유통하는 세력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카더라 정보’를 주로 취급하는 작전세력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주가에 반영되는 ‘꺼리’를 속칭 ‘재료’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M&A설이 바로 재료다. 이를 수집해 보기 좋게 포장하는 사람들을 ‘꾼’ ‘도사’ ‘선생’이라고 부른다. 이들 대부분은 그럴듯한 ‘카더라 정보’를 확산시켜 개미들을 끌어들인 뒤 빠지는 ‘작전세력’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정보 수집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흔히 생각하기 쉬운 메신저, 증권 전문 사이트를 돌며 정보를 취합, 유통하는 사람들은 ‘하수’다. 고급 룸살롱 웨이터를 상대로 귀동냥을 하는 이들도 하수에 속한다. 진짜 고수는 증권사 직원, 애널리스트, 기업 CEO와 친분을 맺고 있다. 때론 기업, 때론 큰손으로부터 주가를 부양해 달라는 청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들 작전세력이 노리는 종목은 손쉽게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 ‘중소형주’다. 작전을 세우기 안성맞춤인 종목이 넘쳐나서다. 개미들의 대박 심리가 폭발적인 것도 이유다. 실제 작전세력에게 재료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개미들이다. 역설적이지만 개미들이 주가 부양의 지렛대 역할을 해야 이들이 돈벌이를 할 수 있다. 제 아무리 ‘대박 주’라도 사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것이다.

이들이 개미들의 눈과 귀를 막는 방법은 비상하다. 작전세력은 주가가 일정한 고점을 유지하면 허수주문·가장매매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주식을 판다. 대량 매도에 따른 주가 하락을 막아 개미들의 의심을 불식하기 위해서다.

작전세력이 개미들을 유혹하는 방법은 또 있다. 이른바 ‘대주주 활용책’이다. 작전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시세 조종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주주를 포섭하는 방법을 말한다. 여기엔 알려지지 않은 중소형주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재벌 2~3세들도 포함된다. 작전세력 B씨는 “개미들을 유혹하는 데 그만한 재료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대주주 또는 재벌 2~3세가 투자하면 돈을 딴다는 개미들의 대박 심리를 역이용하면 ‘게임 끝’이라고 말한다. ‘대주주와 재벌 2~3세가 내부정보를 이용, 부당이득을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주주나 재벌 2~3세를 이용한 ‘카더라 정보’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요즘 ‘카더라 정보’엔 대주주 또는 재벌 2~3세의 움직임 또는 발언이 짜깁기돼 삽입되는 사례가 많다. 올 7월 2일, 한때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카더라 정보’의 원문을 보자. “… 중소기업 A사가 대기업과 공동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대기업에서 A사의 지분 인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 후계자가 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 정보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수많은 개미가 주식을 매입했다가 낭패를 봤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 수준이면 개미들이 열광할 수 있다”며 “이전보다 증권가 ‘카더라 정보’가 더욱 치밀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요동치는 주가에 개미들의 상심이 깊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이럴 때 일수록 주식투자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증권 전문 이성희 변호사는 “주가가 폭락하거나, 약세장이 계속될수록 작전세력이 유포하는 ‘카더라 정보’에 유혹되기 쉽다”며 “약세장에서 떠도는 정보는 100% 역이용된다는 생각을 갖고 주식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머를 있는 그대로 믿고 투자했다간 ‘쪽박’을 찰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루머는 그만큼 매섭다. 특히 개미들에겐 말이다.

심하용 기자 stone@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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