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진짜 성공했나

▲ 지난 14일 막을 내린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에 대한 정부와 시장의 평가가 엇갈린다. [사진=뉴시스]
“알찬 성과를 냈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한 정부의 평가다. 이만하면 자화자찬 수준이다. 하지만 시장 안팎에선 ‘급조된 행사’ ‘졸속행정의 결정판’이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의 발끝도 못 쫓아갔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우리가 놓친 건 무엇일까.

‘대한민국을 쇼핑하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시작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지난 14일 막을 내렸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인해 침체된 국내 소비시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가 야심차게 주도한 행사인 만큼 그 결과에 대한 정부 평가는 긍정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번 행사에 참여한 백화점, 대형 마트 등 92개 유통업체(3만4000여 점포)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7% 증가했다.

홈쇼핑 등 온라인 쇼핑업체 11곳의 매출도 26.7% 늘었다. 이마트 등 대형 마트의 매출 역시 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기획 의도에 맞게 가라앉아 있던 내수를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에 성공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14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내수 회복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면서 “미흡한 점을 보완해 한국의 대표 연례 할인행사로 정착시켜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정부의 평가와 달리 실제 현장에선 부정적 평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졸속’이니 ‘탁상행정’이니 하는 말까지 나돌았다. 미묘한 온도차는 어디서 나온 걸까.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을 살펴보자.

갑작스런 출현=이번 행사는 초반부터 말이 많았다. 일정부터 그랬다. 정부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계획을 처음 언급한 건 9월 22일께다. 정부 측은 “내수 진작과 소비 활성화를 위해 내국인 중심으로 하는 국내 대표 세일 행사를 론칭할 필요가 있어 매년 열리는 코리아 그랜드세일 기간에 이번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코리아 그랜드세일은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열리는 외국인 대상 프로모션 행사다. 취지가 나쁜 건 아니었다. 온라인 쇼핑이나 해외직구가 활성화되면서 소비자를 외국인과 내국인으로 구분하는 게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내수 소비가 침체된 상황에서 내국인을 포함한 대규모 소비 행사를 개최할 필요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행사가 10월 1일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준비 기간이 짧아도 너무 짧았다.

이번 행사에 제조업체들이 참여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준비 기간이 짧아 행사에 투입할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위해 1년 동안 준비를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 같은 굵직한 변수가 터지면서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자 조급해진 정부가 이런 행사를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진짜 대규모 할인행사인가= 이번 행사에서 생각보다 크지 않은 할인폭과 한정된 품목 등으로 실망감을 토로한 고객도 많았다. 가을 정기 바겐세일이나 평소 할인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불만이었다. 실제로 행사 초반에 백화점의 할인율은 대개 10~20%밖에 되지 않았다. 업계에서조차 “정기 바겐세일과 다른 개념의 행사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전자제품이나 명품 등 고가의 품목은 할인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할인율이 낮아 소비자의 만족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막판에 여론을 의식한 백화점과 대형 마트들이 추가 할인에 나서긴 했지만 초반에 물건을 구매한 고객의 원성까지는 피하기 어려웠다. 이번 행사에서 할인율이 그토록 낮은 까닭은 뭘까.

간단했다. 행사가 유통업체 주도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제조업체로부터 물건을 받아 파는 유통업체는 마진율이 높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할인율이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제조업체가 참여하지 못해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의 장점을 취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재래시장 정말 흥행했을까= 이번 행사 직후 중소기업청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통시장 78%의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10% 이상 늘었다. 수치만 봤을 땐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그러나 이 결과는 행사에 참여한 시장 200곳 가운데 50곳만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절반의 의견이 채 안 된다. 실제 이번 행사의 영향권 밖에 있는 재래시장은 상당히 많았다.

▲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제조업 중심의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와는 달리 유통업체 중심으로 진행됐다. [사진=뉴시스]
행사 기간에 중소기업중앙회가 166개 전통시장의 관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곳은 88%(146곳)나 됐다. 특히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자체를 모른다는 전통시장도 절반(56.6%·약 94곳)을 넘었다. 행사에 참여한 업체나 전통시장이 말하는 ‘블랙프라이데이 체감 효과’는 정부 측 발표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사전의 치밀한 계획과 홍보가 필요한 이유다.

내수 효과 글쎄= 이번 행사로 대형 유통채널의 매출이 증가했다지만 소매유통업체의 체감경기는 크게 나아진 게 없다. 지난 1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과 6대 광역시 944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는 전분기와 같은 96으로 집계됐다. RBSI는 유통업체들이 체감하는 경기를 나타내는 수치다. 100을 넘으면 다음 분기 경기가 호전할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그 이유로는 ‘중국 경제 경착륙 가능성’ ‘미국 금리 인상 우려’ 등 대외 변수가 많이 꼽혔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추석 대목에 이어 코리아 그랜드세일과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형 이벤트로 10월 유통 경기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기대가 높았지만 소비심리가 본격 회복되는 데까진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단기 결과만 보고서 내수가 살아나고 있다고 평가하긴 이르다는 거다.

정부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의 작은 성과를 두고 자화자찬해선 안 된다. 추운 겨울날 꽁꽁 얼어 붙은 손에 따뜻한 물을 부으면 잠깐은 괜찮아진다. 하지만 이내 차가워지고 관리를 하지 않으면 동상에 걸릴 위험이 더 커진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의 작은 성과에 샴페인을 터뜨려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김은경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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