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인증기술 기대와 우려

내 손바닥에 흐르는 정맥으로 나를 인증한다. 내 눈으로 돈을 뽑고 내 목소리로 결제를 한다. 생체인증 기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지문, 홍채, 정맥, 얼굴 등 신체의 고유한 특성을 활용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은행도 많다. 그런데 이 기술이 마냥 좋기만 한 걸까. 리스크는 없을까.

▲ 핀테크 기술이 발전하고 비대면 금융 거래가 늘어나면서 생체인증 결제 방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밤 1시. 잠자리에 든 직장인 김영호씨는 갑자기 흡연 욕구가 당겼다. ‘더 못 참겠다’ 싶어 반바지와 티셔츠만 걸치고 집 밖으로 나갔다. 김씨의 집은 아파트 8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쓰레기장 근처 공터로 나섰다. 머리로는 내일 결재 받을 서류를 생각하며 손으로는 담배를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담뱃갑에 담배가 없었다. 편의점에 가서 담배를 사고 싶었지만 지갑도, 간편 결제가 가능한 스마트폰도 챙기지 않았다. 흡연 욕구를 참기 힘든 김씨는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찾아 집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에 갔는데 지갑을 깜빡했다거나 지갑이나 휴대전화를 잃어서 고생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도 멀지 않아 추억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홍채, 망막, 지문, 정맥, 얼굴, 목소리, 서명 등의 생체인증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대면 금융 거래(ATMㆍ텔레뱅킹인터넷뱅킹)가 늘고 있어 생체인증은 더욱 주목을 받을 공산이 크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올 6월 현재 시중은행의 채널별 업무 처리에서 비대면 거래의 비중이 80%를 웃돌았다. 특히 입출금과 자금이체 거래 가운데 88.8%가 비대면 거래를 통해 이뤄졌다. 사실 생체인증 방식은 낯선 기술이 아니다. 일본은 2004년 도쿄미쓰비시은행을 시작으로 UFJ은행, 오가키교리쓰은행, 미즈호은행 등이 ATM 거래에 손가락 정맥 인증 시스템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미국 US뱅크는 특정 문자를 읽어서 고객의 음성을 인식하는 방식을 모바일 뱅킹 서비스에 적용했다. 영국의 바클리스 은행은 손가락 정맥 인식 기술을 인터넷뱅킹과 ATM의 본인인증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각종 정보 유출 사건과 비대면 거래 증가의 영향으로 생체인증 방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면서 “복잡한 비밀번호를 외울 필요도 없고, 보이스피싱 등 금융범죄 예방에도 적용할 수 있어 멀지 않아 기존의 보안시스템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체인증 기술이 보편화 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담배를 찾기 위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간 김씨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담배를 피우러 나온 김씨는 지갑과 휴대전화가 없어도 담배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현금인출기를 찾아가 지문이나 정맥인식 등 생체인증 방법으로 본인 인증을 하고 필요한 돈을 인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은행에 갈 필요도 없다. 편의점에서 생체인증 방식으로 본인의 계좌를 통해 결제하고 담배를 구입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갑 없는 시대 임박

이는 생체인증 기술로 전통의 결제 수단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실제로 생체인증 기술만 도입되면 바쁜 출근길에 지갑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 교통카드 대신 지문이나 정맥인증 방식으로 요금을 결제하면 된다. 지문만 있으면 결제를 할 수 있으니 구내식당의 식권도 사라질 것이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거나 물건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굳이 현금을 낼 필요도, 신용카드를 긁을 필요도 없다.

국내 금융회사가 생체인증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이런 편리함에 있다. 신한은행은 손바닥의 정맥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통장이나 카드가 없어도 센서에 손바닥만 대면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계좌 이체, 송금, 예금 지급, 잔액 조회 등 은행 거래가 가능하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정맥인증 기술이 언제 상용화될지는 모른다”면서도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조만간 생체인증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인터넷은행 비대면 인증 방식으로 홍채 인식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가장 널리 알려진 지문인증 방식 도입을 준비하고 있고, KB국민은행은 생체인증을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지문 인식, 목소리 인식 등은 복제가 가능해 신체를 훼손하는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 2005년 말레이시아에서 지문인식으로 시동을 거는 고급 승용차를 강탈하기 위해 운전자의 손가락을 절단한 사건을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다.

생체 정보를 변경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비밀번호 등 개인 정보는 설령 유출되더라도 쉽게 바꿀 수 있지만 생체 정보는 그런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개인 정보와 함께 생체 정보를 누가 관리하느냐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생체인증 기술의 편의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도입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면밀히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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