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미디어가 주는 굶주림
‘먹방’ 미디어가 주는 굶주림
  •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 호수 162
  • 승인 2015.10.2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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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먹방’을 보는 시청자들은 화면 속 요리 대신 야식집 메뉴를 살핀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TV의 요리 방송을 보자. 예전에는 여성 한두 명이 나와서 차분하게 음식을 만들더니 요즘은 좀 다르다. 남성 요리사의 약진이 두드러진 게 특징이다. 한 술 더 떠 예닐곱씩 떼를 지어 나온다. 요리와 수다가 여성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던 시대는 가고 웃고 떠들며 음식을 만드는 남성들의 시대가 왔다.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는 인류의 진화에서 요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인간은 불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요리까지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류학자 칼턴 S. 쿤도 동물인 인간이 뛰어난 존재로 도약한 주요인을 요리의 발견으로 봤다. 같은 동물이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던 인간이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동물과의 차별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인간은 불을 이용해 감자만 익혀 먹은 게 아니라 그걸로 철을 다스려 무기를 만들었으니 불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셈이다.  이처럼 인류의 진화에 큰 공헌을 한 불은 위대하다. 요즘 이런 불을 지배하는 자들이 바로 요리사인 것 같다. 요리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많은 시청자가 정치인이 떠드는 채널에서 ‘먹방(먹는 방송)’ 채널로 돌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남성 요리사의 활약이 대단하다. 활발한 사회 참여를 통한 여성의 약진이 먹이사슬 상부에 안주한 남성을 밀어내자 위기의 수컷이 본래 불을 다스리던 정복자의 위엄을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되찾으려 하는 듯하다. 정복자들이 전리품을 가져오듯 상대방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옮겨와 음식을 만들어 낸다. 냉장고 속 음식은 주인의 식습관이나 생활 패턴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냉장고 주인은 사생활이 드러나 곤혹스럽겠지 만 개의치 않는다. 곰팡이가 피거나 당장 내다 버릴 만한 상태의 음식이 나와도 즐거워 한다. 냉장고 속 내용물이 궁금하기는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현대판 석빙고가 열리면 그 안의 음식은 낱낱이 파헤쳐진다. 냉장고 주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요구하면 남자 요리사들은 제한된 재료를 조합해 듣도 보도 못한 요리를 해 낸다.
 
심야 시간대에 이를 지켜보는 굶주린 여성은 힘세고 멋진 남성이 만드는 기름진 음식에 넋이 나가고 만다. 화면 속 요리를 먹을 순 없지만 우리 손 안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거기엔 무수히 많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깔려 있다. 치킨, 족발, 보쌈 등을 파는 야식집 전화통은 덩달아 불이 난다.

TV 화면에서는 완성된 요리를 냉장고 주인이 음미하며 먹는데 남성 요리사의 힘에 눌려 격찬을 쏟아낸다. 요리의 본질인 재료의 특성과 영양이 고려되지 않은 채 오락이나 유희의 소품으로 전락한 음식이 정말 맛있다면서 말이다. 미디어가 주는 굶주림일까. 지켜보는 필자도 배가 고파진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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