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친구 ❸

▲ 경기침체가 길어지자 일본에선 폭주족이 성행했고, 이후 군국주의의 망령이 부활했다.[사진=뉴시스]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관통한 ‘문화 코드’가 있다면 단연 ‘조폭 문화’다. TV드라마 ‘모래시계’가 기폭제 역할을 했고, 영화 ‘친구’는 흥행대박을 터뜨렸다. 그 이후 조폭영화는 ‘약속’ ‘신라의 달밤’ ‘달마야 놀자’ ‘조폭 마누라’ 등 전성기를 거쳐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강남 1970’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화뿐만이 아니다. 숱한 TV 드라마에도 수많은 조폭이 등장한다. 공통점이라면 조폭이 매우 인간적이고 멋있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도 풍요롭다. 일부 아이들이 커서 조폭이 되겠다고 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조폭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권위와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조폭의 모습을 보면서 ‘권위주의 시대’의 향수를 느끼는 건 아닐까. 1990년대 이후 민주화를 겪으면서 권위주의가 많이 해체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정당한 권위마저 위협을 받는 한편 조롱거리가 됐다. 권위로 유지되던 구舊질서가 무너졌지만 새 질서가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한 탓이다. 

사람들은 무력감과 왜소함을 느꼈다. 현실의 불만과 미래의 불안감이 확산됐다. 특히 가부장 문화의 붕괴와 경제적 위축은 남성을 무력하고 왜소하게 만들었다. 당시 젊은층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실망을 영화 속 ‘당당하고 멋진’ 조폭의 모습을 통해 보상받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역대 최고 대통령을 꼽는 여론조사에서 그토록 무시무시한 철권정치를 펼친 박정희가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선택을 받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로 2012년 우리는 박정희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는가. 

이런 현상은 매우 위험하다. 한때 독일 국민이 독재자 히틀러에게 열광해 영화 ‘친구’ 속의 질주처럼 나치즘을 추종하며 ‘광기의 시대’를 내달렸다. 그 배경엔 현실의 무력감과 불투명한 미래의 불안감이 깔려 있었다. 1930년대 독일은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치 시대(1860~1890)’를 종식하고 유럽 역사상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 시대라는 ‘바이마르 시대(1919~1930)’를 열었다. 하지만 사회 혼란 속에 1929년 세계 경제대공황이 터지자 독일 국민은 비스마르크 시대보다 강력한 권위를 갈망했다. 결국 히틀러와 나치라는 ‘조폭무리’를 따라 질주했고,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이웃나라 일본도 20여년 전에 그랬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자 젊은이들이 밤마다 떼로 몰려나와 오토바이 굉음을 울리며 광란의 질주극을 벌였다. 이런 폭주족이 창궐한 일본은 그 탈출구를 ‘군국주의의 부활’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이처럼 구질서가 무너질 때 새 질서가 자리를 잡지 못하면 불안과 혼란의 시대가 열린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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