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 프레지던츠컵에 출전한 배상문이 벙커샷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10월 둘째주에 열린 프레지던츠컵은 운영이나 관중 동원 면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골프팬의 눈높이도 몇 단계는 업그레이드됐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남자골프 입장에서는 이 대회를 중흥의 계기로 삼지 못했다. 되레 그림의 떡이자 씁쓸한 이벤트에 불과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10월 둘째주는 ‘프레지던츠 데이’였다. 인천 송도 신도시 잭니클라우스GC 코리아에서 벌어진 2015 프레지던츠컵은 마지막 날 마지막 홀까지도 미국과 인터내셔널 팀의 승부가 갈리지 않을 정도로 관심과 흥분을 자아냈다. 모든 면에서 성대하게 끝났다.

세계 랭킹 1위 조던 스피스(미국)와 2위 제이슨 데이(호주)를 비롯한 세계 상위 랭커들이 대거 참가, 한국 골프팬들에게 최고 수준의 골프 기량을 유감 없이 선사했다. 이 경기를 전 세계 10억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대회 조직위원회 측은 유료 입장객과 관계자를 포함해 11만여 명이 대회를 관전한 것으로 집계했다. 국내에서 열린 골프 대회 사상 최다 관람 인원이다. 대회는 끝났다. 이제 손익계산을 해 보자. 

세계 최고 대회였나 프레지던츠컵은 1994년에 시작됐다. 이 시기는 ‘호주의 백상어’ 그레그 노먼 시대다. 노먼은 1927년부터 열리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골프대항전인 라이더컵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호주와 미국이 골프 대결을 하더라도 라이더컵 못지 않은 수준이 될 수 있다.” 결국 새로 창설되는 대회(프레지던츠컵)는 미국과 호주, 아시아, 아프리카 등 비유럽의 대항전으로 열기로 합의됐다. 하지만 규모나 인기, 관심도 면에서 프레지던츠컵은 라이더컵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한국의 축제였나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을 데려와 대회를 치르려 했다면 출장 사례금(appearance money초대 선수에게 얼굴값으로 주는 돈)은 족히 2000만 달러 이상이 들었을 것이다. 2004년 타이거 우즈가 제주 라온CC에서 스킨스 게임을 치렀을 때 출장 사례금만 400만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했을 게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라이더컵처럼 출장 사례금이 없었다. 상금 또한 없다. 대회 경비는 입장 수입, 시티그룹ㆍ롤렉스를 비롯한 메이저 스폰서의 기부 등으로 충당했다. 선수 본인과 가족친지의 항공료 및 체재비 등만 무료였다. 문제는 이 대회가 미국식으로 치러졌고, 한국은 땅만 빌려 준 형태였다는 점이다. 대회 운영을 위한 텐트와 카메라, 심지어 카트까지 미국에서 가져왔다. 

선수에게 뜻깊은 대회였나 프레지던츠컵에 뽑힌 선수들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합숙이나 단체 훈련을 한 적이 없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지난 8월 말부터 더 바클리스, 도이체방크 챔피언십, BMW 챔피언십, 투어챔피언십 등 준準메이저급 대회가 4주 연속 치러졌다. 이번 프레지던츠컵에 참가한 선수 대부분은 준메이저급 투어에 출전했다. 당연히 체력이 거의 고갈된 상태다. 더구나 프레지던츠컵은 세계 랭킹이나 페덱스컵 포인트와 무관하다. 대륙간 대항전은 명칭일 뿐 선수 입장에서는 달콤한 나들이였을 것이다. 

한국 남자골프 중흥의 계기인가 침체를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국내 남자프로골프는 이 대회를 중흥의 발판으로 삼아야 했다. 불행하게도 그런 조짐이나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국내 선수가 절반 이상 참가했다면 모를까 병역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배상문 한 명만 이 대회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KPGA 입장에서는 이 대회가 공중에서 열린 신기루가 된 셈이다.

KPGA 측은 올해 상반기까지 홈페이지에 “프레지던츠컵을 환영하며, KPGA는 전폭적인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KPGA는 프레지던츠컵 대회를 위해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등 각종 대회를 열지 못했다. 홈페이지에 실은 글도 슬그머니 지웠다. 프레지던츠컵 조직위도 KPGA에 어떤 배려나 공헌을 하지 않았다. 한국 남자골프 입장에서는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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