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 지구촌 인구소멸 국가 1호

▲ 젊은층에겐 아이를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게 걱정이다. 국공립 어린이집 등 공공 보육제도를 확충해야 하는 이유다.[사진=뉴시스]

한국의 저출산 신기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출산율(2014년 1.21명)은 이미 세계 최하위권이다. 인구학계가 우려하는 ‘초저출산 현상(합계출산율 1.3명 미만)’이 올해로 15년째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초저출산을 경험한 국가는 11개국. 일본이 3년, 이탈리아도 11년 만에 졸업했는데 한국만 계속 유급 상태다. 그 결과 당장 2년 뒤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고, 2031년부턴 총인구도 본격 감소할 전망이다. 오죽하면 저출산에 따른 인구소멸 국가 1호로 한국이 지목됐을까.

인구절벽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내년부터 2020년까지 추진할 제3차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이란 게 대부분 1차(2006~2010년)ㆍ2차(2011~2015년) 계획의 재탕삼탕이다. 저출산의 원인으로 만혼晩婚과 비혼非婚을 지목하며 ‘결혼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지만 국가가 단체맞선을 주선하자는 생뚱맞은 방안도 들어 있다.

당정협의에선 초ㆍ중등 과정을 1년씩 단축해 사회 진출을 앞당기자는 학제개편안까지 나왔지만 취업이 안 돼 대학을 휴학하는 현실에서 ‘조기 졸업=조기 취업=조기 결혼’ 공식이 통할까. 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키고 10년 동안 10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출산율이 제자리걸음인 것은 1차 계획이 목표한 ‘기반 조성’, 2차 계획의 ‘보육 지원’ 모두 실패했다는 의미다. 어린이집 숫자가 늘고 이용률도 높아졌다지만 이것이 출산율 상승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대로 연결되진 않았다.

젊은층에겐 아이를 낳는 게 문제가 아니라 키우는 게 더 큰 걱정거리다. 안심하고 맡길 국공립 어린이집을 더 늘리는 등 공공 보육제도를 확충해야 하는 이유다. 맞벌이가 대세인 상황에서 눈치 안 보며 출산 전후 휴가와 육아휴직을 하고 경력 단절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소득과 자녀 특성별 지원 못지않게 여성의 경제활동과 맞물린 보육정책이 필요한 배경이다.

아이 낳고 키우는 일을 가정, 특히 여성에게 부담 지우는 우리 사회의 오랜 관행을 바꿔야 한다. 2002년 ‘어젠다 2010’을 계기로 기존의 남성 중심 ‘1인 부양자 모델’에서 부부 맞벌이를 전제로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시키는 ‘2인 부양자 모델’로 전환해 출산율을 끌어올린 독일을 참고하자.

기업들이 더 달라져야 한다. 면접시험장에서 ‘임신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데 아이 가진 것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여성의 산전ㆍ산후 휴가나 남편의 출산휴가 제도는 이미 600년 전 조선에 존재했다. 세종대왕은 관청 여자 노비에게 산전 한 달 전부터 100일 휴가를, 그 남편에게도 산모를 돌보라며 한 달 산후휴가를 주도록 했다. 일정 규모 이상 사업체에 어린이집 설치를 의무화하자. 대신 시설비와 보육교사 채용 등 운영비용은 세금부과 대상에서 빼 주고. 엄마가 아이와 함께 출퇴근하는 직장에서 웃음꽃이 더 피고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다.

공동주택을 지을 때 단지 내 어린이집 설치를 권장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파트단지 1층에 어린이집을 마련하면 용적률을 높여 주는 유인책을 쓰자. 부모들로선 아파트단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맡아 주니 야근이나 회식으로 늦을 때에도 안심할 수 있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할머니ㆍ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을 돌보면 고령자 취업과 건강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출산과 보육의 주체인 워킹맘과 워킹대디의 의견부터 충분히 듣자. 그래서 우리가 처한 사회ㆍ경제 구조를 변화시키는 획기적 대책을 수립해 꾸준히 밀고 나가자. 정부와 정치권이 진정 내 일로 생각하며 머리를 싸매야 한다. 관련 부처에서 서랍 속의 묵은 아이디어를 모아 두터운 보고서를 내는데 급급해선 재정만 축내며 초저출산국 신기록을 계속 쓸 수밖에 없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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