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누구를 위해 싸우나

▲ 롯데가家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롯데가家 형제 다툼이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서민은 이 싸움에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애먼 투자자만 손해 보고 있다는 지적이 더 많다. 롯데 계열사의 기업가치는 뚝 떨어진 반면에 두 형제가 보유한 롯데 상장사의 평가이익은 되레 증가했기 때문이다. 신辛의 왕국이 방향을 잃었다.

경영권을 둘러싼 롯데가家 형제 다툼이 볼수록 점입가경이다.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작심한 듯 온갖 수를 쓰면서 동생을 몰아세우고 있다.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형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롯데 형제간 다툼은 재벌가 싸움의 단골 메뉴인 ‘아버지 위임장’이 등장하면서 반전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8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으로부터 받은 위임장을 앞세워 신 회장을 비롯해 한국 롯데그룹, 일본 롯데홀딩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발판으로 지난 14일 일본에서 열린 광윤사 주주총회에서 신 전 부회장은 대표이사에 피선, 신 회장에게 완승을 거뒀다. 신 회장은 이 주총을 통해 이사직에서 해임됐다.

특히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에게 광윤사 주식 1주를 넘겨 이목을 끌었다. 신 전 부회장이 광윤사의 50%+1주, 다시 말해서 과반의 주주로 올라서며 사실상 광윤사를 지배하게 됐기 때문이다. 신 전 부회장의 아버지를 앞세운 전략은 갈수록 과감해지고 있다. 16일에는 신 총괄회장을 언론에 등장시키는 초강수까지 뒀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신 총괄회장이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도록 한 거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후계자는 당연히 장남이다”면서 “간단한 문제인데 시끄럽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신 회장 측이 반격에 나섰다. 자칫하면 ‘한·일 원톱 경영’ 구상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쿠데타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신 전 부회장의 행보에 딴죽을 걸었다.

먼저 신 총괄회장이 묵고 있는 롯데호텔 34층의 제3자 출입을 통제했다. “신 총괄회장의 경호를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를 만나는 걸 차단하겠다는 속내까진 숨기지 못했다.  그러자 장남 신 전 부회장은 16일 부친의 집무실 관리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해 롯데호텔을 방문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에게 본인의 집무실 주변에 배치한 직원을 즉시 해산 조치하고 CCTV를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등 6가지 사안에 대해 엄중히 통고했다”면서 내용증명을 발송하겠다고 밝혔다. 6가지 통고 사항에는 ▲신 전 부회장이 집무실 및 지원 인력 관리를 총괄하게 할 것 ▲신 총괄회장의 소통 행위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할 것 ▲신 총괄회장의 즉각 복귀와 명예 회복 ▲불법 경영권 탈취에 가담한 관계자의 해임 및 민·형사상 책임 추궁 등이 담겨 있다.

피로감 주는 롯데 형제 다툼

롯데그룹 측이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고령의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불필요한 논란을 조성하고 있다”며 강력히 비판했지만 신 전 부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건강 검진을 이유로 신 총괄회장을 휠체어에 태워 병원을 다녀왔다. 앞으로 있을 법정 공방에서 신 총괄회장의 건강 상태가 중요한 문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모든 리스크를 사전에 점검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난투극을 방불케 하는 형제의 싸움 탓에 롯데그룹은 말 그대로 ‘엉망’이다. 신 총괄회장의 비서실장이라고 주장하는 인사만 2명이 됐다. 신동빈 회장 측 인사인 이일민 전무와 신 전 부회장 측 인물인 나승기 법무법인 두우의 변호사가 그들이다. 이 싸움이 여간해선 끝날 것 같지도 않다. 신 전 부회장은 최근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신동빈 회장이 자신의 앞에서 내뱉은 말을 공개했다.
 
“나는(신 회장) 끝까지 싸울 것이다. 너(신 전 부회장)가 죽든 내가 죽든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경영권 싸움을) 하겠다.” 그런데 두 형제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미디어는 원래 자극성 소재를 좋아한다. 재벌가 다툼은 특히 그렇다. 기사 조회수든 시청률이든 모두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싸움은 국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두 사람이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멱살을 잡든 욕설을 내뱉든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 매기 바쁠 뿐이다.

 
두 형제가 정작 신경 써야 하는 건 경영권이 아니라 ‘롯데그룹의 개혁’이라는 얘기다. 롯데그룹은 무엇보다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받고 있다. 골목상권 침해, 불공정거래 등에 대해서도 해명하고 고쳐야 할 게 많다. ‘한국에서 벌어 일본에서 쓴다’는 의혹도 불식시켜야 한다.

이런 국민의 경고를 무시하고 볼썽사나운 다툼을 계속하면 롯데그룹에 좋을 게 없다. 나쁜 신호음은 벌써 울렸다. 형제간 다툼 이후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가치가 줄줄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 전 부회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동생 신 회장을 상대로 한국과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지난 8일 롯데그룹 상장사 8곳의 평가손실은 6393억8500만원에 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형제의 주머니는 더 두둑해졌다. 두 형제가 보유한 상장사 주식 평가액은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8일 두 사람의 주식 평가액은 전 거래일인 7일 종가 기준으로 신 회장이 28억8400만원, 신 전 부회장이 60억2800만원 평가이익을 각각 거둔 것으로 집계됐다.

애꿎은 피해자는 결국 국민

현재 신 회장은 쇼핑·제과·칠성·칠성우·손해보험·케미칼·푸드 등 7종목, 신 전 부회장은 쇼핑·제과·칠성·칠성우·푸드 등 5종목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두 사람의 싸움으로 애먼 다른 투자자들의 피해만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롯데가 형제싸움이 이쯤에서 마무리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은경 더스쿠프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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