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음식을 기분 전환 목적으로 먹어선 곤란하다. [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소득이 늘고 주거가 안정돼도 왠지 심신을 괴롭히는 것은 줄지 않는 느낌이다. 술, 담배, 커피 등 기호식품과 입에 달콤한 음식은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그나마 위안을 준다.

하지만 음식이 기분이나 분위기 전환에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덮어둔 채 술과 맛있는 음식에 탐닉하는 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필자 역시 사람인지라 맛있는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다. ○, × 판을 나눠 주고 ‘먹기 위해 줄을 서 본 경험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를 들 것이다. 필자도 당연히 ○다.

얼마 전 우리 가족이 부산의 허름한 돼지국밥집 앞에 줄을 섰을 때 얘기다. 핫플레이스로 TV에 소개된 맛집을 아내가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후 장인·장모를 포함해 여섯 식구가 찾아갔다. 이것이 땡볕이 쏟아지는 대명천지에 장시간 줄을 서게 된 재앙의 전주곡이 될 줄은 그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가 3시간 줄을 선 끝에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대로변에 줄을 서다 보니 행인뿐만 아니라 버스 승객까지 우리를 쳐다보며 지나간다. ‘돼지국밥 한 그릇 먹자고 이 짓을 하나’라는 생각에 필자는 주눅이 들고 창피했다. 고행苦行의 제안자인 아내는 그새 선글라스를 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좁은 식당에 사람이 넘치니 줄은 줄지 않았고, 연로하신 장인·장모와 어린 쌍둥이는 지쳐서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결국 줄을 선 지 2시간 30분 만에 입장했고, 다시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데 30분이 걸렸다. 장시간 줄을 선 수고에 비해 그리 별다른 감동이 들지 않는 국밥을 먹으며 필자는 헛웃음이 나왔고, 맛에 대한 평가는 갈렸다.

줄을 서 있는 동안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가 한 끼 음식을 먹기 위해 번호표를 받거나 장시간 줄을 서는 이유는 무얼까. 이른바 ‘맛집’에 따라 붙어 있는 줄은 전쟁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또는 노숙자들이 한 끼 식사를 받을 때 생긴 줄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음식이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먹고 즐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전락했음을 잘 보여 준다.

필자는 먹을거리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는 것이 두렵다. 눈에 보기 좋고 입에 단 음식이 활개를 치거나 그것을 조장해 인기를 얻는 미디어는 더 두렵다. 인간은 음식물의 대사를 통해 생명력과 항상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음식은 체내 환경이 변할 때 몸 속 상태를 유지해 주는 항상성의 수단임과 동시에 항상성을 깨는 원인이다. 비만이나 각종 질병은 체내 항상성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 결과다. 단지 기분 전환을 목적으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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