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업 왜 못 막았나

3295개.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를 갚기에 급급한 한계기업의 숫자다. 이 가운데 2435개사는 한 번 이상 한계기업을 경험한 곳이다. 이런 한계기업이 많은 나라는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점은 한계기업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계기업 문제, 우리는 왜 못 풀고 있을까.

▲ 좀비기업이 한국 경제의 건전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B급 좀비영화처럼 잊을 만하면 다시 등장하는 이슈가 바로 한계기업이다. 좀비기업으로 불리는 한계기업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다. 당시의 경제 상황은 지금과 무척 흡사했다. 1990년대 세계 경제를 이끌며 승승장구하던 정보통신(IT) 분야가 2000년대 들어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른바 IT버블이 터지면서 글로벌 경기가 휘청거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꺼내 든 카드는 기준금리 인하였다. 미국은 2000년에 6.5%이던 기준금리를 이듬해 2%로, 2003년에는 1%까지 낮췄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도 저금리정책을 2004년까지 유지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한계기업 양산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이다. 일본이 특히 그랬다. IT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부실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지만 ‘잃어 버린 20년’의 단초만 제공하고 말았다. 저금리로 한계기업의 퇴출을 막은 게 은행의 부실을 키우고 나라경제의 체질을 악화시킨 거였다. 다소 잠잠하던 한계기업이 또다시 이슈로 떠오른 건 2008년 ‘리먼 사태’가 터진 이후다. 그해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자 한계기업이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경기가 급랭하면서 순이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하는 기업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김진성 우리금융연구소 실장은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우량기업과 열등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됐다”면서 “그 결과 한계기업을 포함한 열등기업군의 수익성ㆍ성장성은 악화되고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는 높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침체로 경영 환경이 나빠지면 어떤 기업이든 한계기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한계기업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데다 퇴출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올 6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외부감사(직전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 120억원 이상인 회사, 직전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이 70억원 이상으로 부채총액이 70억원 이상이거나 종업원수가 300명 이상인 회사) 대상 비금융법인 2만5452개 가운데 한계기업은 3295개에 달했다. 특히 2005~2013년 한계기업 경험이 있는 만성적 한계기업의 수는 2435개로 전체 한계기업의 73.9%를 차지했다.

한계기업을 퇴출하기 위한 시도가 없은 건 아니었다. 처음 한계기업의 문제점이 제기된 2005년 당시 신용보증기금은 “한계기업에 대한 보증을 과감히 축소해 정책금융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은 더 이상 보증의 수혜자가 되지 않도록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한계기업에 선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금리가 불러낸 좀비기업


한계기업의 퇴출을 방해한 건 무엇일까. 우선 금융회사의 대출을 꼽을 수 있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수익성이 떨어진 금융회사는 예대마진을 유지하기 위해 대출에 집중했다. 이는 가계대출 증가는 물론 기업대출 증가를 부추겼다. 더욱이 은행은 기업 대출을 할 때 사업성과 성장성보단 담보의 유무에 초점을 맞췄다.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을 서 주니 기업이 도산해도 은행이 보는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 한계기업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더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사진=뉴시스]
물론 시중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성장 없이 이자 상환만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로 대출을 끊기는 현실상 어렵다”면서 “하지만 과거처럼 한계기업에 추가 대출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계기업이라는 이유로 대출을 정리하면 성장 가능성이 남아 있는 기업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라면서 “한계기업을 무조건 정리해야 한다는 식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무분별한 정책금융 남발도 한계기업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박근혜 정부는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술력 중심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이른바 창조금융ㆍ기술금융을 요구했다. 그 결과 시중은행은 앞다퉈 중소기업 대출을 늘렸다. 올 7월 기준 KEB하나, 우리, 신한, KB국민, NH농협, IBK기업 등 주요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385조4231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대출의 건전성이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출 연체율이 높아진 것이다.

나쁜 기업문화, 한계기업 초래

올해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늘린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6월 기준 대출 연체율은 각각 1.27%, 1.82%를 기록했다. 이는 은행권 평균인 1.04%를 웃도는 수치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으로 대출이 늘어났고, 그 결과 연체율이 높아졌다”면서 “‘비 올 때 우산 빼앗지 마라’는 말로 대출을 장려하더니 이젠 한계기업을 정리하고 압박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우리나라의 기업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는 주장도 제기된다. 기업 대표이사의 책임과 역량 부족이 한계기업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거다. 한국기업평가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10년 동안 부도를 냈거나 기업회생절차, 워크아웃 등을 신청한 73개 기업 가운데 11개사의 부실 발생 원인은 경영관리 리스크 부족이었다.

김우일 대우M&A 대표는 “대표이사에 재직하는 기간이 대체로 짧다 보니 기업의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일단 덮고 보자는 성향이 크다”면서 “고액 연봉을 받다가 퇴임하면 그만인데 일부러 문제점을 들춰낼 CEO가 몇이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한계기업 역시 선제적 구조조정과 사업다각화 등에 나서지 못한 CEO의 책임이 크다”면서 “고액의 연봉을 보장하는 CEO문화를 혁파하고 성과대로 수당을 받게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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