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참여 기업의 허무한 상생 약속

▲ 시내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선심성 공약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사진=뉴시스]
너 나 할 것 없이 ‘사회공헌’을 입에 담는다. 반드시 상생을 이뤄 내겠다고 말한다. 어떤 총수는 사재 출연까지 약속했다. 12월 판가름나는 시내면세점 특허전戰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정작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면 얼굴을 바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내면세점의 사업 특허권을 따내기 위한 기업들의 유치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최종 사업자 선정일(이르면 12월 초)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출사표를 내민 기업들은 저마다 유치의 명분과 당위성을 강조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번 유치전은 참여 기업들이 대규모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강조하며 막대한 투자를 약속하는 등 ‘쩐錢의 전쟁’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일부 기업은 총수까지 나서서 사재 출연을 공언했다. 이번 유치전의 화두가 ‘사회공헌과 상생’에 맞춰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관세청이 제시한 면세점 선정 기준(총점 1000점 중 150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총대를 멨다. 청년 창업 활성화를 지원하는 ‘롯데 엑셀러레이터’ 법인을 1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설립하고 청년희망펀드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이 펀드에도 70억원의 사재를 넣을 방침이다. 그룹 차원에서도 2020년까지 5년 동안 총 1500억원의 상생기금을 롯데면세점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두산그룹은 동대문 지역 발전을 위한 동대문 미래창조 재단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박용만 회장이 약 1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재단은 그룹 100억원을 합쳐 총 200억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신세계디에프는 서울 시내면세점을 사회 공헌 및 상생 면세점으로 설계하기로 했다. 관련 비용만 5년 동안 총 2700억원을 투입한다. 본점 신관 맞은편 메사빌딩에 1만200㎡(약 3080평) 규모의 ‘국산의 힘’ 센터를 설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대한민국을 홍보할 수 있는 전초기지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SK네트웍스는 SK면세점의 총 8200억원의 면세점 투자비 가운데 2400억원을 사회 환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200억원 규모의 온누리상품권 고객 사은품 지급, 올빼미 면세점 운영, 유망 신진 디자이너 육성, 소상공인 무상 ICT솔루션 제공, 6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미소금융, 소상공인 자녀 교육 및 취업 지원 등 11대 상생 약속을 실행하는 데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그 어마어마한 사회공헌 자금을 마련하느냐다. 롯데는 향후 5년 동안의 성장세를 반영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면세점 사업 때 발생하는 영업이익률 약 6~7%를 감안, 다각도로 자금을 만들겠다는 거다.

난데 없는 사회공헌 왜?

두산은 언급했듯이 박용만 회장 100억원, 그룹 100억원을 모아 재단에 증여한다. 두산은 이미 100억원 증여계획을 공시했다. 면세점 사업 참여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상생 지원금은 향후 발생하는 매출의 10%를 집행하는 방식으로 모을 방침이다. 두산 관계자는 “향후 5년 동안 5000억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에 그 가운데 10% 수준인 540억원 정도가 사회공헌 비용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네트웍스는 1조4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활용하고 일부는 영업이익에서 환원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신세계디에프는 신중한 모습이다. 사회공헌 관련 투자계획이 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한다는 전제 아래 나온 만큼 이를 구체화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공헌을 위해 쓰겠다’는 약속이 지켜질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다. 늘 그래 왔듯이 정작 사업권을 따내면 ‘내가 언제 그랬냐’며 오리발을 내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면세점을 노리는 기업들의 사회공헌 발표가 ‘보여 주기식 홍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금껏 사회공헌에 인색하던 기업들이 이제 와서 기부금 운운하는 건 꼼수”라고 차갑게 반응했다.

현행 사업자 선정 방식이 ‘과한 쇼잉’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면세점 특허권을 유지하는 한 ‘황금알’을 차지하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권오인 경실련(경제정책) 팀장은 “면세점 사업이 독점인 데다 특혜성까지 있다 보니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사업권을 따내려 한다”면서 “관세청이 제시하는 선정 기준 점수에 부합하려면 선심성 공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권 팀장은 “한 해 시내면세점 영업이익은 수천억원에 이르는데 사회공헌은 몇십억원에 불과하다”면서 “따지고 보면 어마어마한 손해도 아니고 사회공헌기금도 아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금 기업이 발표한 계획은 안案에 불과하다. 사업권을 따내야 실행이 가능한 것이다. 참여 기업 관계자들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생색내기식 공헌 될까 우려

익명을 원한 한 참여 기업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을 따내야 그때부터 상황에 맞게 자금 마련 계획을 세우는 거 아닙니까. 지금 구체적인 계획을 말해 봐야 나중에 바뀔 게 뻔합니다. 모두 일반 기준의 사회공헌 기금을 발표한 것뿐입니다.”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려는 기업이 발표한 사회공헌은 공수표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사업권을 따려면 무엇이든 던질 수밖에 없고, 그 실행 여부는 따낸 다음 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김은경 더스쿠프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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