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사업의 명암

▲ 전문가들은 지역주택조합 설립 열풍에는 리스크가 있다고 경고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분양 아파트보다 공급가격이 저렴하다. 수백대 1의 청약 경쟁도 없다. 최근 지역주택조합의 아파트가 말 그대로 ‘뜨는’ 이유다. 저렴한 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을 정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지역주택조합의 리스크는 없을까. 누군가 이런 형태의 투자를 부추기고 있지는 않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지역주택조합의 명암을 짚었다.

집주인의 과도한 전세금 인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직장인 박경한(35)씨. 박씨는 결혼 후 모은 자금과 부모님이 보태 준 돈을 더한 1억8000만원으로 서울 동작구의 한 지역주택조합에 가입, 조합비를 납부했다. 아이들이 점점 커 가면서 저렴하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하지만 부푼 기대는 잠시뿐. 시행사가 사업 부지를 형식상 공매 절차를 통해 다른 시행사로 넘겨 버리는 바람에 납부한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박씨는 허공에 사라진 1억8000만원이 어디에 사용됐는지조차 모른다.

부동산 경기 회복에 힘입어 전국에 지역주택조합 설립 열풍이 불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전국 33개 사업장 2만1000여 가구의 지역주택조합이 설립 인가를 받았다. 12년 만에 가장 많은 물량이다. 현재 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사업장도 120곳 10만 가구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지방에서 수도권, 중소형 단지에서 대단지로 공급이 확산하는 양상이다.

1977년에 도입된 지역주택조합은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이 한데 모여 공동주택을 만드는 제도다. 아파트 재건축 등에서 메이저 건설사와 경쟁이 힘든 중견 건설사 등이 이 사업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가 흥행하는 이유는 정부의 규제 완화에 있다. 정부는 2013년 8월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원 거주지역 요건을 동일 시ㆍ군 6개월 이상 거주에서 시ㆍ도 광역생활권으로 확대했다. 지난해 5월에는 조합원 대상 가구주의 주택 기준도 60㎡ 이하에서 85㎡ 이하로 넓어졌다. 여기에 도시정비 사업보다 절차가 간단해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지역주택조합의 흥행을 부추긴다. 더욱이 조합원 물량의 가격이 일반분양에 비해 10~20%가량 싸고, 청약통장이 없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지역주택조합의 한계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주택조합은 주민이 조합을 구성하고 사업 부지를 매입해 주택을 건립하는 사업이어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조합원이 져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시행사나 시공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반분양 아파트와 크게 다른 점이다. 조합원이 많은 권리를 가지는 동시에 무한대의 책임도 안고 있는 셈이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봇물

조합원에 한번 가입하면 금전 손해 없이는 탈퇴하기도 어렵다. 시공사가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사업 진행 도중에 시공사가 교체되더라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조합 운영이 투명하지 않아서 비리가 끊이지 않는 문제도 골칫거리다. 지방의 주택조합 아파트 등에서 끊임없이 소송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토지 매입 과정에서 토지의 원주인이 값을 올려 받으려고 매매 약속을 깨는가 하면 건설사와 매입 경쟁을 붙이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지역주택조합 설립의 가장 큰 변수는 부동산 시장의 상황이다. 설립 후 아파트가 지어지는 3년 뒤의 부동산 시장이 지금처럼 호황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업계에서는 짧게는 내년 4월 총선, 길게는 내후년 상반기께 주택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주택 경기 호황이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조합에 가입한다면 폭탄을 떠안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업무 대행사가 저렴한 분양가를 내세워 고도의 마케팅을 펼치고 있어 열풍은 지속될 전망이다. 지역주택조합 조합원으로 참여할 때 유의할 점으로는 무엇일까. 먼저 대상 부지를 확보(매도청구 가능한 95% 이상)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토지 매입에 실패한 경우는 사실상 사업이 좌초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부 지역주택조합은 원하는 동ㆍ호수를 지정하게 해 주겠다며 조합원 가입을 현혹한다. 하지만 동ㆍ호수 지정은 사업승인 후 추첨하는 게 원칙이다. 미끼라는 거다. 사업기간에 제한이 없다는 점도 신경 써야 한다.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법으로 사업을 마쳐야 하는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걸림돌에 부딪히면 사업이 늘어질 수밖에 없다. 대행사는 이 기간만큼 운영비를 확보하기 위해 조합원들로부터 추가 가입비 또는 계약금 명목의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비 사용 내역도 꼼꼼하게 봐야 한다.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사업 초기자본금이 없기 때문에 조합장이나 대행사가 외부로부터 끌어온 돈으로 견본주택을 만들고 대행사 직원의 급여를 준다. 홍보물 등도 모두 이 돈으로 제작된다.

싸다고 무작정 덤비면 낭패

이런 투자금은 보통 토지를 매입한 뒤 사업 시행 과정에서 갚아 나간다. 그런데 조합 설립 인가가 나지 않았다면 투자금의 출처와 용처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거나 사업이 실패해도 대행사는 그냥 폐업하면 그만이다. 시공사도 약정 단계여서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투명한 회계 운영을 하고 있는지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특정 시공사의 간판을 내걸고 조합원을 모집하는 조합도 경계하는 게 좋다. 지역주택조합은 조합 설립 인가 이전에 시공사를 선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합 설립 이전에 조합ㆍ건설사 간에 양해각서(MOU) 정도는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선정된 시공사는 아무런 법률 책임이 없어서 사업 추진이 어려워 보이면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다.
장경철 부동산센터 이사 2002c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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