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버스 좁아터진 좌석 논란

▲ 경기도 지역 일부 광역버스의 좌석이 너무 좁다는 지적이 수차례 나왔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사진=뉴시스]
광역버스를 타 봤는가. 좌석이 좁지 않은가. 혹시 덩치가 커서 그런가라고 자책한 적은 없는가. 아니다.  규정을 무시한 광역버스가 상당수다. 문제는 이를 관리ㆍ감독하는 공공기관이 제 역할을 했느냐다. 더스쿠프(The SCOOP) 취재진이 광역버스의 내부 사진을 담당자에게 보내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저런….”

“광역버스의 좌석이 너무 좁다.” 최근 경기도에 속출하는 민원 내용이다. 인터넷과 SNS, 경기도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의 교통불편 신고란에도 비슷한 불만 사항이 많이 접수되고 있다. 이 불만은 미디어도 다뤘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 광역버스 좌석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입석이 넘쳐 난다. 좌석제를 뒷받침할 만큼 버스 대수가 늘어나지 않으니 좌석제의 현실성이 떨어져서다. 일부 버스들은 승객을 더 많이 태우기 위해 기존에 39~ 45인승이던 좌석을 49인승으로 늘렸다. 그 과정에서 좌석 공간은 좁아졌고, 시민들은 불편을 겪고 있다. 버스 뒷문을 막아 좌석을 늘린 버스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버스요금이 올랐음에도 시민들은 이처럼 불편하고 위험한 좌석 또는 위험한 입석에 몸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개선된 게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제기됐는데 해결된 건 없다는 얘기다. 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문제의 광역버스를 직접 타 봤다. 기자가 탄 버스는 경기도 용인에서 서울 강남역을 오가는 1251번. 출고된 지 몇 달 안 된 새 버스여서인지 내부가 깔끔하다. 좌석 공간은 얼핏 봐도 좁다.

앉아 보니 실제로도 좁다. 엉덩이를 좌석 등받이 부분에 딱 붙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지 않으면 앉을 수가 없다. 몸을 구겨 넣어 간신히 앉아도 다리에 힘을 주지 않으면 무릎이 앞좌석에 닿는다. 참고로 기자의 키는 173㎝, 몸무게는 73㎏다. 평범한 남성 몸이다. 덩치가 작은 여성 승객만이 몸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걸로 봐선 ‘덩치 작은 여성 전용버스’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버스를 탄 지 10분이 지나자 일단 무릎이 아팠다.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무릎이 앞좌석을 콕콕 찧었다. 급정거를 하는 경우에는 말 그대로 ‘곤욕’이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허리 아래가 아파 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광역버스 안에서는 서 있는 것보다 앉는 게 편하고 안전하다. 하지만 이럴 바엔 서서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대체 이런 버스가 어떻게 고속도로를 질주하게 된 걸까. 경기도 버스정책과에 문의했다. 담당자는 “좌석제 실시 이후 버스들이 좌석을 개조해 늘리면서 비슷한 항의가 들어온 적이 있다”면서 “하지만 좌석은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안전규정)’에 정해진 바에 따라 배치되기 때문에 이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시민을 배신한 ‘시민의 발’

안전규정에 따르면 ‘버스 좌석은 앉은 바닥을 기준으로 가로ㆍ세로 40㎝ 이상, 앞뒤 공간은 앞좌석 뒷면과 앉은 좌석 앞면 65㎝ 이상’이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기자가 탑승한 광역버스는 규정을 준수했을까. 실측을 해보니 애매한 구석이 있다. 뒷좌석을 기준으로 하면 5~10㎝가량 좁다.

바닥면을 기준으로 삼으면 규정에 부합한다. 광역버스의 안전규정을 관리, 감독하는 교통안전공단 담당자는 "안전규정의 기준은 바닥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승객입장에서 보면 안전규정을 지킨 광역버스도 좁아터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규정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규정을 어긴 버스의 경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거다. 만약 버스제조업체가 규정을 어겼다면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과징금을 물고 해당 차량을 리콜해야 한다. 운송업체가 불법개조를 해도 벌금을 내야 한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담당자의 책임도 적지 않다.

하지만 광역버스 좌석을 관리ㆍ감독하는 교통안전공단의 담당자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기자와 교통안전공단의 담당자가 나눈 웃지 못할 이야기다. 독자 편의를 위해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대화를 나누기 전 광역버스의 내부 사진을 담당자에게 먼저 보냈다. 참고로 담당자는 여러 명이었다.

기자 : “좌석 공간이 이렇게 좁습니다.”
담당자 : “저런…”
기자 : “공감하시죠?”
담당자 : “이해는 합니다만 혹시라도 규정을 어긴 게 아니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기자 : “딱 봐도 말이 안 되는데 규정을 지켰다 하더라도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담당자 : “….”
기자 : “만약 좌석이 규정에 맞지 않게 배치된 거라면 안전규정을 관리ㆍ감독하는 공단의 시스템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담당자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차량의 안전규정 검사에서도 1년에 7~8건 정도는 규정을 어긴 차량이 나오고 리콜되고 있습니다.”

▲ 일부 광역버스는 좌석에 앉은 성인 남성의 무릎이 의자에 닿는다.[사진=김정덕 기자]
기자 : “양산 차량은 다르겠지만 개조 차량은 승인 이전에 검사를 하니까 전수조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담당자 : “그래도 못 잡아낼 때가 있습니다. 대신 규정을 어긴 게 적발되면 리콜을 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걸 언론에도 공개하면 해당 기업도 지탄을 받습니다.”
기자 : “규정을 어기면 제조사와 운수회사가 모두 처벌을 받나요?”
담당자 : “제조사는 과징금을 물고, 운수회사는 불법 개조로 판명됐을 때 벌금을 물게 됩니다.”
기자 : “운수회사가 공단 몰래 불법 개조한 게 아니라면 담당 공무원도 징계를 받아야 할 듯합니다만.”
담당자 : “담당 관청의 협조를 구해 해당 회사 버스를 검사할 계획입니다.”

교통안전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전국의 버스 584대가 개조됐다. 그 가운데 대부분이 경기도 지역 버스다. 전수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시민들을 짐짝 취급하는 버스가 고속도로를 질주해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려된다. 공단 관계자는 “문제가 확인되면 조사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취재 과정에서 들은 국민을 위한 유일한 말이었다. 물론 조사 이후 문제가 개선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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