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호전’ 건설사 주가 왜 빠졌나

▲ 3분기 국내 건설업계가 좋은 실적을 거뒀지만 주가는 오히려 하락세를 기록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올 3분기 건설업계가 모처럼 활짝 웃었다. 주택시장 호황을 틈타 좋은 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건설사 주가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투자자가 호성적을 기록한 건설업체를 외면한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먼저 불황의 냄새를 맡았다”고 분석했다.

10월 22일. 삼성엔지니어링이 3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건설업계의 이목이 쏠렸다. 건설업계에서 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첫 번째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 삼성엔지니어링은 2013년 3분기 어닝쇼크(7000억원)의 2배를 웃도는 영업손실(1조127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사업장에서 1조3500억여원의 추가 원가가 반영된 게 결정타였다. 150억원으로 영업이익 추정치를 잡고 있던 증권가는 혼란에 빠졌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어닝쇼크를 기록하자 건설업계에는 ‘해외플랜트 부실 공포’가 고개를 들었다. 2013년 건설업계를 뒤흔든 ‘해외플랜트발發 어닝쇼크’가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이번에도 상황이 달랐다. 현대건설은 지난 3분기 매출 4조7114억원, 영업이익 264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 16% 증가한 수치다. 대우건설은 같은 기간 매출 2조6021억원, 영업이익 120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지난해 동기와 비슷했지만 영업이익이 24%나 늘었다.


GS건설은 매출 2조7898억원, 영업이익 109억원의 실적을 냈다. 대림산업은 매출 2조3992억원, 영업이익 68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에 영업손실 1894억원을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현대산업개발도 지난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 55% 증가한 매출 1조1453억원, 영업이익 866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을 제외한 건설사 대부분의 3분기 실적이 양호했다는 것이다.

원인은 국내 주택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 민간 수주는 전년 동기(6조8300억원) 대비 170.7% 증가한 18조4878억원을 기록했다. 월간 수주통계가 집계된 이래 사상 최대 수치다. 주택 인허가 실적도 늘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54만140가구의 주택이 인허가를 받아 지난해 전체 물량 51만5251가구를 넘어섰다. 저유가로 고전하고 있는 해외 사업의 손실을 국내 주택 사업으로 막은 셈이다.

그럼에도 건설업체들의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올해 하반기에 들어와 추락세가 가팔라졌다. 주택 분양 시장의 강자라는 현대산업개발의 주가가 대표적이다. 7월 1일 6만7700원을 찍은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 5일 4만5250원에 머물렀다. 4개월 사이에 33.1% 떨어진 셈이다. 현대건설 역시 같은 기간 주가가 15.4% 빠졌고 GS건설, 대림산업, 두산건설의 주가도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한 대우건설의 주가만 오름세를 보였는데 상승률은 3.8%에 그쳤다. 대형 건설사 대부분이 기대 이상의 실적을 달성했지만 투자자의 심리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투자자가 건설업체를 외면한 이유는 ‘해외사업 리스크’다. 과열 경쟁으로 인한 저가 수주로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대형 건설사들이 여전히 해외사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해외 공사 수행 능력 부족, 국제 유가 하락으로 인한 발주처와의 협상력 저하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올해 들어 10월까지 국내 건설업체들의 해외건설 수주금액은 377억 달러로 지난해 말 660억 달러의 42% 수준에 머물렀다.

▲ 전문가들은 해외 건설 수주가 위축되고 주택시장의 열기까지 꺽이면 건설업계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5년간의 수치와 비교해도 최저 수주금액이다. 연말까지 두 달의 여유가 있지만 지난해 수준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역별로는 중동 지역의 수주가 크게 줄었다. 건설사들은 지난해 중동에서 313억 달러 규모의 수주를 했지만 올해는 10월 현재 143억 달러에 머물러 있다. 

투자자가 떠난 두 번째 이유는 국내 주택시장의 어두운 미래 전망이다. 건설업계는 최근 ‘대규모 미분양 사태의 현실화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주택시장 훈풍에 발맞춰 공급량을 늘렸는데 수요가 떠받쳐 줄지 의문이라서다. 올해 말까지 예상되는 총 분양 물량은 약 49만 가구. 지난해 27만 가구보다 80%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수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물량은 미분양 사태를 부르고 부동산 가격 하락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주택수요가 공급 떠받칠지 의문

그렇다고 수요가 시장의 기대치를 총족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부동산 시장 과열을 의식한 정부가 규제의 칼을 뽑아 들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이 아파트 집단 대출을 두고 건전성 검사에 착수한 것이 신호탄이다. 금융감독원은 10월 28일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을 상대로 집단 대출 건전성 검사에 들어갔다. 집단 대출이란 은행의 개별 심사 없이 건설사가 보증을 서고 아파트 계약자 전원에게 대출을 해 주는 것이다. 집단 대출 건전성 검사가 강화되면 은행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져서 집단 대출 이자가 상승해 수요가 얼어붙을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사업이 없고 해외에서는 손실 때문에 수주를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여기에 금리까지 인상되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건설사들의 표면 성적표가 괜찮았음에도 주가가 빠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자자가 불황의 시그널을 먼저 읽었다는 거다. 우리나라 건설업계, 반전 카드가 필요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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