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교수의 探스러운 소비

고령화가 진행되면 소비 시장이 위축될까. 노인들은 젊은이들보다 돈을 쓰지 않으니까? 예측컨대 그렇지 않을 거다. 노인들은 동일한 소득대의 젊은이들에 비해 사치품이나 명품을 적게 구매하지만 어쨌든 먹을 것, 입을 것, 즐길 것을 위해 돈을 쓴다. 우리가 노인 시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노인 1인당 소비 규모가 작다고 해서 노인 시장의 규모가 주는 것은 아니다. [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2030년에는 가구주가 60세 이상인 비율이 어느 정도 될까. 서울시가 통계청 자료를 활용해 추계한 결과를 보면 44%다. 현재 27%보다 17%포인트 높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피하기 어려운 트렌드라는 거다. 그것이 야기하는 문제도 상당히 많다. 반면에 소비 시장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빈약한 듯하다.

서울시 인구의 거의 절반이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상황에서 가구당 1~2명뿐인 자녀가 모두 독립하면 남은 부부 또는 단독으로 사는 가구들은 무엇을 하며 지낼까. 출근할 필요는 없지만 집에만 있기엔 심심한 사람들, 그렇지만 늘어난 기대여명(특정 시점에서 앞으로 더 생존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 때문에 한가하게 소비와 여가를 즐길 수만은 없는 해방둥이 세대들.

이들이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고 돈을 쓸지 생각해 봤느냐는 거다. 여러 연구가 이들 세대의 노후 준비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한다. 노인 시장이 커져도 노인 소비 시장의 규모는 기대만큼 크지 않을 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 규모가 커지면 어떤 형태로든 그 타깃을 위한 시장이 커지기 마련이다.

노인들은 동일한 소득대의 젊은이들에 비해 사치품이나 명품을 적게 구매하지만 어쨌든 먹을 것, 입을 것, 즐길 것을 위해 돈을 쓴다. 이들이 고급품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1인당 소비 규모가 작다고 해서 그 시장의 규모가 덩달아 작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고령화가 일찍 시작된 일본은 노인 소비자의 니즈를 발굴하고 대응하는 데에도 앞장서고 있다.

노인들이 공동 거주하는 소형 주택이 주택가 곳곳에 자리를 잡았고, 소형 편의점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끼 식사용 주먹밥이나 소소한 생활용품을 판다. 차가 없는 노인들을 위해 은행이나 우체국 업무도 대신해 준다.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데서는 노인끼리 모여 살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지킬 수 있는 생활협동주택인 코하우징(Co-Housing)을 설계·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녀와의 동거나 상속, 주택 등의 가치관이 서구와 다르지만 그럼에도 고령화가 점점 진행되면 서구나 일본의 사례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커지는 노인 시장을 위해 주택이나 도로·보건·교육·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은 물론 식품, 의류, 자동차, 금융, 여행, 미용, 통신을 취급하는 모든 시장이 달라져야 한다.

노인들은 대체로 시간은 많지만 돈은 그만큼 많지 않다. 다리나 허리가 약간 아프거나 눈이 침침할 수도 있다. 미래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하고,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존중과 대접을 바라는 소비자들이다. 이들의 기대에 맞는 적절한 시장이 없으면 종로3가의 노인들은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 잔으로 하루 종일 진을 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낙엽 지는 쌀쌀한 공원에서 앉아 있기보다 1만원짜리 한 장 들고 편안하고 우아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을 텐데 어쩌겠는가.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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