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16)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편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를 쓴 이기진(54) 서강대 교수는 취미는 가장 이상적인 연인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잘 맞는 연인도 늘 위안을 주지는 않지만 취미 생활을 하면 항상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에서다. 그는 취미를 ‘평생 연인’으로 삼아 보라고 권했다.

▲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해 보니 잘 되고 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면 그게 내가 잘하는 일”이라고 조언했다.[사진=지정훈 기자]
Q 멘티가 멘토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취미 생활은 좋아하는 걸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취미 생활에 열중하다 보면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는 거죠. 공부와 취미 생활을 양립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A 멘토가 멘티에게

일이든 취미 생활이든 두 가지 이상의 활동을 할 땐 불가피하게 어느 것에 집중할 건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너무 상식적이죠. 맞아요. 선택엔 왕도가 없습니다. 여건 상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힘들게 살아야죠. 힘들면 힘든 대로. 그게 인생입니다.

다만 깊이 있게 하는 공부와 시험공부는 대처 방법이 다를 수 있어요. 시험공부는 말하자면 기술과 요령이 필요하죠. 점수를 잘 따기 위해 하는 것인 만큼 단기적으로 집중력을 발휘하고 시험 직전 가장 효율이 높을 때 하는 초치기에도 능해야 합니다. 시험 보고 나서 암기한 걸 깨끗이 반납하면 어때요? 그래도 결국 내 몸 어딘가 일부라도 남습니다.

취미 생활은 일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래도 취미가 일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면 일의 비중을 51%, 취미 생활을 49%로 잡아 보죠 뭐. 거의 절반을 차지하니 노는 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뭘 하면서 노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뭐가 됐든 할 때 즐겁고 일도 잊어버릴 만큼 몰입할 수 있는 취미가 있어야 합니다. 공부든 일이든 너무 힘들 땐 취미와 더불어 놀아요. 리프레시도 되고 재충전도 됩니다. 머리도 맑아지죠.

취미 생활은 연애하는 것과 비슷해요. 취미란 그러니까 연인 같은 존재죠. 연인이 생기면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고 액세서리 등 좋은 것을 사주고 싶어지듯이 취미 생활에 빠지면 거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싶고 필요한 장비 등에 돈도 쓰고 싶어지죠. 취미는 어쩌면 항상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연인인지도 몰라요.

 
재미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활력소입니다. 하던 일, 하던 공부 빨리 마치고 재미 볼 생각을 하면 저절로 흥이 나잖아요? 그게 어떤 재미든. 그런 재미를 느끼는 것에 한번 깊이 몰입해 보세요. 송곳으로 찌르듯이 깊이 천착해 보세요. 그렇게 뚫고 들어가다 보면 석유가 치솟듯이 나의 내면에서 무엇인가 분출할지도 몰라요. 파이팅!

한번 해 보세요. 그게 무엇이든. 지금 관심 있는 것에 시간이든 열정이든 여러분이 가진 자원을 투입해 보세요. 그래도 됩니다. 한번 해 봐도 됩니다. 그렇게 자꾸 해 봐야 그게 모멘텀이 되어 그 다음 것, 그 다음 다음 것도 할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겪겠죠. 반성할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때 집어치우면 되잖아요? 송곳으로 찔러보듯 한번 들이대 보는 겁니다. 좌충우돌해 보는 겁니다. 그게 젊음의 특권입니다. 내 나이에 그러면야 민폐겠지만.

그러다 좌절도 하겠죠. 그게 내가 져야 할 짐이라면 이고 지고라도 가야죠. 고통이 극심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할 수도 있어요. 분명한 건 그 또한 지나갈 거라는 겁니다. 결국 잊어버리게 될 거예요. 그렇게 괴로울 때 딴 짓도 해 보는 거죠. 그럴 땐 딴 짓이 최고입니다.

내가 한 최고의 딴 짓은 아르메니아공화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이 나라가 치른 아제르바이젠과의 영토 전쟁에 뛰어든 겁니다. 그냥 약자 편에 서고 싶었어요. 그로부터 25년이 흘렀죠. 올해 내가 아르메니아 과학원 회원이 됐습니다. 외국인으로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죠. 그 나라 과학자라면 최고의 영예이고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나 자신도 잘 모를 수 있어요. 그럴 땐 특정 취미를 즐기는 친구들과 어울려 보세요. 공부만큼이나 노력도 해야 합니다. 일단 익숙지 않아 재미를 못 느끼는 기간을 잘 견뎌야 합니다. 나는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데 자전거도 즐기는 수준이 되려면 6개월~1년은 타야 합니다. 취미 생활에 우선순위를 두려면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친구 만나는 횟수를 줄여야 할 수도 있어요. 제대로 놀려면 연구도 해야 합니다.

젊은 날 특정 연예인한테 빠져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고 그에게서 어떤 취향을 ‘전수’받을 수도 있죠. 그의 패션을 모방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나만의 열정이 시작될 수도 있고, 적어도 나중에 추억거리가 될 수 있죠. 언젠가 비등점에 이르면 폭발할 수도 있는 열정. 그 에너지가 어쩌면 공부 쪽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중에 자신이 진출한 분야에서 롤 모델을 찾는 데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직업을 선택할 땐 좋아하는 일보다 잘하는 일을 고르세요. 잘하는 일엔 성취감이 따르고 그게 모멘텀으로 작용해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이죠. 자신감은 마치 지갑 속 현찰 같은 거예요. 있으면 든든하죠. 이런 과정을 거쳐 그 일이 좋아질지도 모릅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잘하는 과목이 물리였어요. 잘하니까 시험을 잘 봤고 성적도 잘 나왔죠. 막연하게 ‘물리학자가 돼도 잘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고등학생이 물리를 잘해 봤자 얼마나 잘하겠어요. 어쨌거나 지금은 이 일이 나도 좋고 물리학 교수니 안정적인 일이기도 하죠.

내가 잘하는 일은 어떻게 알아내죠? 해 보니 잘 되고 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면 그게 내가 잘하는 일이에요. 해도 잘 안 되는 일은 성과도 잘 안 나고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스스로 의기소침해 지죠. 그러니 그 일을 좋아할 수도 없어요. 너무 상식적인가요?

맞아요. 주머니 속에 든 송곳처럼 특정한 능력이 있으면 언젠가 누군가의 자극을 받아 그 능력이 발현될 겁니다. 그래서 그런 자극을 줄 선생님과 선배가 필요합니다.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그런 자극을 받을 수도 있어요. 주변에서 자극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대학 4학년 때 친구들과 어울려 삼성전자에 입사원서 내러 간 일이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찢어버리고 돌아왔어요. 그냥 회사원으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들어갔으면 나름대로 열심히 했겠지만 난 대기업 조직과 잘 안 맞는 사람이에요. 결국 교수가 됐죠. 삼성맨이 됐으면 지금보다 덜 행복했을 거예요. 난 지금 만족스럽고, 딴 짓을 하는 내가 좋습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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