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노점 한복판에서…

▲ 이대 앞 노점 상인의 소원은 이 자리에서 장사를 계속 하는 것이다.[사진=지정훈 기자]
노점은 노점대로 할 말이 있다. “우리가 상권을 일으킨 주역”이라는 거다.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계획이 있다. “일반 시민의 보행권이 먼저”라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을까. 노점 대부분이 생계형 창업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고 세금 한푼 안 내는 노점이 거리를 점유해서도 안 된다.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

“죽을 각오도 돼 있다.”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이대) 앞에서 만난 노점 상인 A씨의 말이다. 서대문구청이 내년 상반기 이대 앞 노점을 신촌기차역 공원 부근으로 이동 배치, ‘스마트 로드숍(Smart Road-shop)’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계획이 알려지자 일부 상인은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양측의 입장은 분명하고 단호하다. 노점 상인들은 ‘이렇게라도 먹고살아야 한다’며 아우성이고, 구청 측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 맞받아친다. 이 갈등의 현장 속으로 더스쿠프가 펜을 집어넣었다.

서울시 차원의 노점 정비로 갈등이 일어난 주요 지역은 서대문구 이대역, 강남구 강남역 등이다. 언급했듯 서대문구청은 이대 앞 노점을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해 조성한 ‘신촌 연세로’가 모델이다. 열악한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각종 공공시설물을 깔끔하게 정비한 이 도로는 사람 중심의 보행 환경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8월 ‘2015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 앞 노점의 정비 작업은 시작부터 삐걱댄다. 지난 11일 구청 담당자와 면담을 하고 왔다는 A씨는 “일방적인 통보의 자리였다”며 “지금의 이대를 살린 건 우리 노점인데 이제 와서 우리의 존재를 등한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노점 상인의 의견도 비슷했다.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먹거리가 많은 이대 노점을 찾아오면서 인근 상권에 활력이 감돌았다. 우리 노점 상인은 이대 상권의 부활에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구청 담당자들은 보행, 위생, 국제 위상의 측면에서만 노점을 본다.”

한편에선 이대 노점 상인들이 과도하게 맞선다고 비판한다. 구청에서 기반시설을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도 버티려고만 한다는 거다. 하지만 A씨의 말은 달랐다. “믿을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다. 이전엔 지금 자리에 가판대를 설치한다고 했지만 담당자가 바뀌면서 계획도 변했다.” 사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행정을 믿기 어렵다는 얘기다.

강남 지역의 노점도 오랜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참다못한 전국노점상총연합은 지난 10일 강남구청을 방문, “노점상 강제철저와 탄압정책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강남구는 10여년 전 테헤란로에 ‘노점타워’를 세우고 이를 노점상들에게 무상임대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노점상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흉물 취급하면서 부자만을 위한 구區를 만들겠다는 게 강남구청의 생각이다.”

▲ 노량진 컵밥거리의 노점들이 새 옷을 입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게 됐다.[사진=김미란 객원기자]
갈등은 깊고 앞길은 막막

하지만 강남구청 역시 단호하긴 마찬가지다. 불법 노점을 없애 안전한 보행로를 시민에게 돌려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마주 보고 달려오는 폭주기관차처럼 강남구 노점상과 강남구청 측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서울 중구도 다양한 노점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쉽지만은 않다. 중구청은 노점실명제를 발판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노점을 운영할 계획이다. 1인 1노점만 인정, ‘기업형 노점’을 퇴출하고 지속적으로 영업한 이들에겐 도로점용허가를 내준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청년실업자나 저소득층에게 노점의 영업권을 일정 기간 주겠다는 파격 플랜도 있다.

하지만 중구의 일부 노점 상인은 “온갖 사탕발림을 해서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면 규제를 통해 목을 조일 것”이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접지 않고 있다. 이대 앞 노점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구청에 대한 불신이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노점과 지자체의 갈등은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일까. 아니다. 합의점을 찾아가는 지자체도 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이 대표적이다. 노량진은 고시생이나 학원 수강생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특수한 공간이다. 하루 유동인구가 12만명에 달하는 노량진 노점의 ‘컵밥’은 어느샌가 명물로 자리 잡았다. 끼니때가 되면 노점 앞에 길게 늘어서 주문순서를 기다리거나 인근에 선 채로 식사를 하는 학원 수강생들을 볼 수 있다.

이런 노량진 노점은 최근 둥지를 이전했다. 노량진 삼거리~만양로 입구에서 만양로 입구~사육신공원 육교로 이동한 것이다. 천막 대신 규격화(2.8×2.15m)된 새로운 노점으로 옷도 갈아입었다. 노점마다 수도와 전기시설을 마련하고, 사이사이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쉼터도 생겼다. 노량진 ‘거리가게 특화거리’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얻었다.

물론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노량진 노점 역시 갈등의 연속이었다. ‘보행을 방해한다’는 민원 때문에 동작구청은 강도 높은 단속을 통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철거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이런 단속은 일시적 효과만 내는 데 그쳤다. 단속을 안 하면 민원이 늘어나는 현상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됐다. 묘안을 찾던 동작구청은 노점 상인과 대화를 자리를 갖기 시작했다. ‘노점과 지역주민과의 상생’이라는 대원칙 아래 주민과 상인, 노점 상인들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공청회도 열었다. 현장조사, 간담회, 구청장 면담도 실시했다. 이런 노력의 아름다운 결과물이 지금의 ‘거리가게 특화거리’다.

“머리를 맞대니 답 나오더라”

노량진 노점을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상인 B씨는 “지금까지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면서 “단속이 심하던 시절엔 구청 원망도 참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B씨는 현재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 “새로운 노점으로 바뀌면서 1000만원 이상의 목돈이 들었다. 하지만 노점이 깨끗해졌다며 좋아하는 손님들이 많다. 이걸로 됐다.”

B씨의 바람은 소박하다. 구청과 상생의 길을 계속 걸었으면 한다. 지금의 관심과 배려가 담당자가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노점 운영 준수사항, 위생분야 방안을 제도화하고 있다”면서 “노점 실명제, 조례 제정 등 상생을 위한 방안을 계속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때만 되면 지자체와 노점이 “으르릉” 거리지만 갈등을 풀 수 있는 해법은 있다. 바로 ‘소통’이다. 노량진 노점은 좋은 모델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객원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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