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화장품 국내서 더 비싼 이유

국내에 수입되는 화장품 가격이 유독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광고비와 임대료가 제품 가격에 반영돼서일까, 아니면 소비자가 호갱이라서 무작정 가격을 높인 걸까. 그럴듯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니다. 답은 수입화장품 유통사의 독과점 구조에 있다. 혼자 들여와 혼자 판매하니 맘대로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거다.

▲ 수입 화장품이 해외보다 최대 2.4배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사진=뉴시스]
국내에 수입된 화장품 가격이 해외에서 판매되는 금액보다 최대 2.46배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 7월 국내 시장에서 판매량이 많은 수입 화장품 65개 제품의 가격을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일본 5개국에서의 평균 가격과 비교해 본 결과, 모든 제품이 국내에서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채널별로 보면 국내 백화점에서 주로 판매되는 비오템(로레알코리아), 랩시리즈(이엘씨에이한국), 맥(이엘씨에이한국) 등의 제품 가격은 해외 평균 가격보다 1.02배에서 많게는 1.56배 높았다. 드러그스토어 판매 제품 역시 해외보다 1.11~2.46배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사례를 살펴보자. 국내 드러그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는 라로슈포제(로레알코리아) 시카플라스트 밤(B5 100mL) 제품은 국내에서 2만9900원에 판매되고 있지만 프랑스와 일본에서의 소비자 가격은 각각 1만3880원, 1만1440원에 불과했다. 백화점 판매 제품도 마찬가지다. 비오템(로레알코리아) 옴므 폼 쉐이버(200mL)의 국내 가격은 3만6000원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이보다 훨씬 저렴한 2만790원, 독일에서는 2만5380원에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 가격이 해외 평균보다 1.56배 비싸다는 거다. 같은 브랜드의 화장품이 국내 시장에서 유독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수입 원가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소비자연맹이 국내 화장품 수입업자들의 유통 마진을 확인하기 위해 수입 원가와 판매 가격을 비교·분석한 결과, 판매 가격은 수입 원가보다 3~9배 높은 수준으로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업자들의 유통 마진이 화장품 가격을 끌어올린 셈이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한-미·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화장품 관세가 철폐됐지만 수입 원가보다 몇 배 이상 비싸게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정부의 방침과 달리 개방화의 효과가 소비자 후생으로 연결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물론 수입 유통사가 마진을 남기기 위해 가격을 끌어올리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로레알코리아의 관계자는 “국가별로 유통 정책에 따라 가격이 상이할 수 있다”면서 “생산 원가, 마케팅비, 물류비, 인건비, 세금 등과 같은 직간접적인 비용이 포함되면서 가격을 책정하는 데에 여러 변수가 생긴다”고 말했다.

문제는 직간접적인 유통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국내 수입 화장품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이다. 한 수입유통사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비싼 임대료와 광고비 등이 추가로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입 화장품 가격 높은 이유

▲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유통 경로가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광고비, 임대료 등이 가격 결정의 요인이라면 유통 채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야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국내 수입 화장품의 가격은 어디든 똑같다. 백화점이 서울에 있든 지방에 있든 마찬가지다.

같은 제품의 브랜드 공식 온라인 몰에서 사도 값은 동일하다. 예컨대 바비브라운 스킨 파운데이션(SPF15 PA+ 30mL)은 오프라인 모든 매장과 공식 온라인 몰에서 7만2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는 국내에 수입된 화장품 가격이 높은 진짜 까닭이 따로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그 이유는 바로 수입유통사의 독과점 구조다.

예를 들어 로레알그룹의 브랜드는 국내 유통·판매를 담당하는 자회사 로레알 코리아를 설립해 이를 통해 국내에 독점 판매한다. 이런 판매 독과점 구조가 고가 가격 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수입 독점해 유통시키는 독점 공급 사슬로 인해 가격 결정에 있어 우위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에 비해 비싸게 팔리는 유통 구조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도 “유통 채널이 다양하지 않고 소비자의 선택이 제한되는 측면이 있는데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서는 유통 경로가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싸야 잘 팔린다는 편견

요즘처럼 불황기에 수입 화장품 브랜드가 고가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이유는 또 있다. 고가 브랜드를 좋아하는 한국 소비자의 맹목적인 충성도 때문이다. 여기에는 비싸면 품질도 좋을 거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 8월 10~30대 여성 소비자 308명에게 ‘수입 화장품이 다른 국가보다 비싸게 판매될 경우 구매하겠는가’를 물어본 결과, ‘비싸더라도 품질이 좋으면 구입한다’는 의견이 42.6%로 가장 많았다.

수입 화장품을 선택할 때 가격은 절대 가치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맹목적인 충성도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 조사에서 ‘비쌀수록 품질이 좋다’고 답한 여성 소비자는 전체의 29.9%에 불과했다. 명품이더라도 합리적 소비를 하겠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비싼 것이 좋은 제품이라고 맹목적으로 믿는 경향이 줄어든 결과로 보인다”면서 “화장품 제조·판매업체는 고가 정책을 고수하기보다 합리적인 가격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현 더스쿠프 기자 psh056@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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