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보호 상한액 5000만원 논란

▲ 금융회사의 부실 가능성이 커지면서 예금자보호한도를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금융회사의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익성이 해마다 악화되고 있어서다. 정부가 한계기업의 정리에 나선 것도 이유다. 기업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은행의 부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예금자보호법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금자보호법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은행이 망하면 예금자는 돈을 몽땅 잃을까. 그렇지 않다. 이를 보호하는 법이 있다. 1995년 제정된 예금자보호법이다. 이 법의 취지는 금융회사가 영업정지나 파산 등으로 고객이 맡겨 둔 예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예금자보호법이 주목을 받은 건 2011년 발생한 ‘저축은행’ 사태였다. 2000년대 저축은행은 본업인 서민금융에서 눈을 돌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치에 열을 올렸다. 2005~2007년 부동산 붐으로 PF를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쏠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PF대출로 끌어들인 돈은 저축은행을 위기로 몰아 넣는 뇌관으로 작용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이 돈이 부실화했기 때문이다. 2011년 2월 금융위원회는 부실의 늪에 빠진 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고, 대규모 뱅크런(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했다. 예금자보호법이 주목을 끈 이유가 여기에 있다.

뱅크런 막아주는 예금자보호제도

예금자보호법은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로부터 예금 보험료를 받아 기금을 적립해 금융회사가 경영부실 등의 이유로 예금자에게 예금을 지급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면 (은행을 대신해) 보험금을 지급해주는 것이다. 이 법의 보호 대상은 은행ㆍ보험사ㆍ증권사ㆍ저축은행 등 모든 금융회사다. 농협과 수협의 지역조합ㆍ신용협동조합ㆍ새마을금고 등은 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하는 대신 자체 기금을 마련해 예금자를 보호하고 있다.

현재 예금자보호법에서 보호하고 있는 예금의 한도는 1인당 5000만원이다. A은행에 4000만원의 예금이 있고 B은행에 1억원의 예금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두 은행이 파산이나 영업정지 상태에 처하면 A은행의 4000만원은 전부 보상 받을 수 있다. 하지만 B은행의 예금 가운데 절반은 보상받지 못한다.

주목할 점은 이 법이 또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의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3분기 은행의 NIM은 1.56%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국내은행의 3분기 영업실적 잠정치도 지난해보다 30 00억원 감소한 1조4000억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비이자부분의 수익 역시 지난해 1조10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은행 수익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91.3%(2014년 말 기준)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은행의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예금자보호법이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업 구조조정의 본격화다. 최근 정부는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를 갚기에 급급한 한계기업 3925개를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부실채권 정리, 대손충당금 적립 등을 이유로 이익 규모는 더 감소할 전망이다. 금융회사 부실이 더 심각해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예금자보호법의 상한액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보호금액 5000만원이 2001년 이후 유지되고 있어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은행의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예금자보호금액 한도를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침체에 따른 장기불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예금자보호 한도를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대규 한국디지털대(법무행정학) 교수는 “지금의 예금자보호 금액은 국내 총생산액, 예금 규모, 환율 등 경제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예금보호한도액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세배 이상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회사의 부실이 심각해지면 저축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저축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미래 소비의 증가는 물론 장기적인 경제성장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저축률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보호한도를 증액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증액을 통해 예금자 보호한도의 국제적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의 예금자보호한도 수준은 1인당 GDP의 1.7배에 불과하다. 미국의 4.6배, 일본(2.6배), 영국(3.1배), 독일(2.8배)의 보호한도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예금자 보호한도를 증액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지난 10월 29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건전성 규제 선진화 방안’이다. 정부는 이 방안을 발표하면서 회생정리계획의 방안으로 2017년까지 채권자 손실분담(bail-in)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채권자 손실분담 제도는 금융회사의 부실이 발생할 경우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금융회사의 채권자에게 손실을 분담시키는 조치다.

문제는 예금자(예금채권자)도 손실 분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2013년 유동성 위기에 빠진 키프로스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10만 유로 이상의 예금에 47.5% 비율의 헤어컷(가치가 하락한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유가증권의 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을 시행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일반 예금자까지 채권자의 범위에 포함될 경우 큰 혼란과 저항이 발생할 수 있어 금융당국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만약 일반 예금자까지 채권자의 범위에 포함된다면 이는 예금자보호제도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법이 제정되지 않아 채권자의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다”며 “이는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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